파킨슨병은 뇌의 운동 회로 중의 도파민 신경이 손상되어서 운동 관련 퇴행 증상을 나타내며 이와 함께 자율신경장애와 정서적 변화 등의 비운동증상을 나타낸다. 현재 사용 중인 약물들은 증상을 완화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하는 목적으로 투여되며 특히 손상된 도파민 신경의 기능을 보완하는 약물들이 주종이다.

파킨슨병 약물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병의 진행을 멈추거나 적어도 진행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아직까지 파킨슨병을 치유하는 약물은 없지만 다양한 기전과 방식을 통해 질병의 진행을 근본적으로 조절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파킨슨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는 약물이 신경의 손상을 늦추거나 회복시켜야 하므로 약물 개발을 위하여 신경 손상의 원인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환자마다 증상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병리학적 특징과 발병의 원인도 다양하다.

1817년에 파킨슨 박사가 운동 증상을 나타내는 환자들을 보고함으로써 그의 이름을 딴 파킨슨병에 대한 정의가 증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실제로 파킨슨병은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여 발병하는 복합적인 질병이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며 일부의 환자는 가족력이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발병의 원인이 불분명하다. 

병의 원인이 다양한 만큼 질병과 관련된 바이오마커가 다수 알려져 있다. 시누클레인, GBA, LRRK2, PARKIN 등이 그 예이다. 시누클레인은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지표 물질로서, 신경전달 과정에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지만 구조가 불안정해서 어떤 계기로 응집을 하여 신경세포 내에 침착하여 손상을 준다.

GBA는 세포 내의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에 관여한다. 파킨슨병 환자의 5%가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비교적 일찍 발병하고 증상이 특히 심한 경향이 있다.

PARKIN은 세포 내 에너지 생산과 관련된 과정에 작용하는데 여기에 변이가 있으면 일찍 파킨슨병에 걸린다. 특히 주목을 받는 바이오마커는 LRRK2로서 세포에서 다양한 기능을 하는 효소이다.

파킨슨병 환자의 1-2%가 LRRK2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데 이들 변이가 있는 사람들이 증상의 정도나 양상, 발병의 시기에 있어서 대부분의 파킨슨병 환자와 다르지 않아서 역으로 해석하면 대부분의 파킨슨병의 원인이 LRRK2와 관련된 과정에서의 불균형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어서 관심을 받는다. 

바이오마커에 직접 작용하는 약물들이 개발 중이다. 시누클레인에 대한 항체 약물 두 종류 (바이오젠의 신파네맙과 로슈의 프라시네주맙)가 최근의 임상시험 2상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진해거담제로 사용 중인 암브록솔이 GBA 효소 활성을 강화하는 작용이 있어서 파킨슨병의 진행을 늦추는 가능성에 대해서 임상시험 중이다. LRRK2 효소의 활성을 억제하는 저분자 화합물 DNL151/BIIB12는 임상 3상을 할 예정이며 RNA 제제도 개발 중이다.

또한 이들 바이오마커들이 관여하는 신경세포 내의 기능과 관련하여 세포 내에서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이 원활하지 않을 때, 세포 내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 때, 세포에 손상을 주는 활성 산소가 과다하게 발생할 때 신경의 손상이 오고 따라서 이들 과정을 조절하는 약물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경 보호 작용을 하거나 신경의 활성을 조절하는 물질들도 약물 개발의 타겟이다.

다른 질병에 사용하는 약물을 파킨슨병에 적용하려는 사례들이 많다.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조절하는 약물인 엑세나타이드의 경우 임상시험 2상에서 환자가 약물을 투여하는 동안 효과를 나타냈을 뿐 아니라, 투여를 중지한 후에도 여전히 증상 개선의 상태를 유지했다.

엑세나타이드는 펩타이드 호르몬인 GLP1과 유사한 물질이다. 이를 계기로 엑세나타이드와 그와 유사한 당뇨병 약물들 다수가 임상시험 중이다. 기전은 항염증 작용과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완화제로 사용되는 메만틴은 시누클레인의 변형이 다른 신경으로 전파되는 과정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다고 하여 임상시험을 3상 단계에서 진행 중이다.

칼슘채널 길항제를 복용하는 고혈압 환자는 파킨슨병에 덜 걸린다는 역학조사에 근거하여 이들 약물이 신경보호 작용이 있다는 가설이 있었으나 그 중 하나인 이스라디핀이 임상시험에서 병의 진행을 늦추지 못했다. 빈혈약으로서 과다한 철분을 제거하는 킬레이터이며 항산화 작용을 나타내는 데페리프론도 파킨슨병 후보 약물이다. 

파킨슨병 약물 개발에서 유전자 치료제와 세포 치료제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GBA 변이가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GBA의 유전자를 도입함으로써 도파민 신경의 손상을 막는 치료제가 개발 중이며 신경의 활성을 조절하는 물질인 GDNF, 도파민 생성에 관여하는 효소 AADC, 운동신경 회로를 조절하는 물질 GAD 등의 유전자 치료제가 개발 중이다. 또한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손상된 신경을 대체할 세포치료제 다수가 임상시험 중이다. 

지난 20년간 파킨슨병과 관련하여 수행되어 완결된 임상시험에서 약물 개발의 성공률은 거의 15%에 가깝다. 비교적 높은 성공률을 보이는 이유는 지금까지 개발된 약물들이 증상완화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개발의 후기 단계에 있는 약물들의 대부분은 도파민 신경에 대하여 작용함으로써 증상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이에 더하여 도파민 신경 외의 다른 신경계에 작용하여 운동증상을 개선하고 이상운동증 및 비운동증상 완화를 목표로 하는 약물들의 개발이 주종을 이룬다.

파킨슨병의 질병을 조절하는 약물의 개발은 증상 완화제에 비해 기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성공 사례가 없고 3상으로의 진입도 어렵다. 2022년 현재 임상시험의 최종 단계 (3상)에 있는 질병조절제는 3개에 불과하다.

파킨슨병이 복합적인 원인에서 기인하며 병리학적으로 다양하다는 점에서 약물 개발의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파킨슨병이 진행되는 과정을 등산에 비유하곤 한다.

지리산을 등산할 때에 천왕봉(도파민 신경 손상)에 오르는 경로는 다양하다. 노고단, 화엄사, 중산리, 백무동을 비롯해서 천왕봉에 가기 위해서 등산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여러 곳이다. 과정과 시간, 난이도는 다르지만 어느 곳에서 시작해도 종국에는 천왕봉에 이르게 된다.

중산리에서 산을 올라가는 환자에게 약을 주겠다고 노고단 입구에서 기다리면 그를 만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느 한 과정을 공략하는 약물을 환자에게 투여한다고 해도 정작 환자에게 있어서 다른 과정이 문제가 되어 신경의 손상이 진행되고 있다면 그 약물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파킨슨병의 조기 진단이 어려운 점도 약물 개발의 어려움을 가중한다. 신경은 일단 손상되면 회복하기 어렵다. 파킨슨병 치료 약물의 효과를 보려면 병의 초기, 신경의 손상이 심하지 않은 때에 수행되어야 한다.

병의 초기 단계라고 하여도 사실은 신경의 손상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상태이다. 환자가 운동 증상을 자각하고 병원을 찾을 무렵이면 보통 도파민 신경의 절반 이상이 손상된 때이며, 증상을 나타내기 훨씬 전부터 파킨슨병의 진행과 관련된 다른 신경의 손상이 이미 진행 중이다.

약물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은 병을 가급적 일찍 진단하며 증상이 발현되기 이전의 환자를 찾아서 수행할 필요가 있다. 단일 바이오마커만으로는 환자마다 다른 병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전조 증상, 유전자, 항체, 뇌영상 기술 등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이용하여, 파킨슨병을 진단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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