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옛말이 있다. 중국 양나라 무제 때 화가 ‘장승요’라는 사람이 용 두 마리를 그렸는데, 거기에는 웬일인지 눈동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를 궁금히 여긴 사람들이 화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화가는 ‘만일 자기가 용의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이 즉시 살아서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사람들은 이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화가가 마침내 용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자, 천둥 번개가 치면서 용이 살아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반면에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은 화폭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미켈란젤로(1475-1564)가 그린 바티칸 박물관의 시스티나 성당 중앙 천장화 중 네 번째 그림에서 바로 이러한 화룡점정의 순간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인간의 창조에 관한 성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구약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 사업의 절정으로서, 마지막 여섯 번째 날에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인간(아담)의 창조’를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명사 ‘아담(adam)’이란 어느 특정한 인물을 가리키지 않고 일반적 의미의 인간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아담’이라는 명사가 특정한 인물을 가리키는 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창세기 4장 25절에 이르러서이다.

‘화룡점정’이라는 말을 미켈란젤로가 그린 인간의 창조 사건에 적용해본다면, 인간에게 창조주의 숨결이 불어넣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용의 눈에 마지막 점이 찍혀 용이 기운차게 살아나는 순간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할 수 있다.

초월적인 생명의 영(spirit)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참다운 인간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7절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인간만이 지닌 초월지향성을 성서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발견된다.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과 초월지향성에 대한 암시는 창세기 1장에서도 발견된다. 1장 26-27절에서는 인간이 ‘신의 모습으로’(in the image of God) 창조되었다고 강조된다. 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진술은 이후에도 몇 번 더 반복해서 나온다(참조: 창세기 5,12; 9,6).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러한 진술의 의미가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종교사적인 측면의 연구는 고대 근동(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문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고대 문헌들에서 발견되는 왕이 신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린다는 사상에 근거하여, 인간은 신의 대리자로서 땅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았기에 신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창세기 1장 28절에서는 인간의 창조 이후 인간이 땅을 지배하고 동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 받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지배-피지배의 관계에서만 보려 하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해석 시도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자연환경 오염과 생태적 위기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인간이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마음껏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인격성 안에 고귀한 존엄성과 초월적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을 참으로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결정적인 손길은 인간에게 선사되는 창조주의 숨결이다.

이러한 초월적 기원은 곧 인간 존재의 고귀함과 존엄함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인간 생명을 지닌 인격체의 자유와 존엄성의 원천적 근거가 발견되는 것이다. 이처럼 고귀한 자유와 존엄성을 지닌 인간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을 돌보고 지켜야 하며, 모두의 상생과 조화 속에 평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닌다. 오늘날의 생태적 위기 시대에 이러한 인간의 고귀한 사명은 더욱 강조된다.

거장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그림에서는 인간에게 창조주의 숨결이 전달되는 장면이 매우 특징적으로 묘사된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그림에서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생명의 숨결을 부여받는 순간을 이른바 ‘구강 대 구강’(mouth to mouth) 호흡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창조주의 손가락이 인간의 손가락에 마주 닿기 위해 다가온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여기서 벌거벗은 상태로 그려진 아담(사람)의 모습은 그 이전 중세 시대의 부정적 시각과는 달리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르네상스 미술의 혁명적인 변화를 잘 보여준다. 비스듬히 자신의 오른쪽 팔꿈치에 기대어 앉은 채로 창조주를 향해 왼손을 내뻗고 있는 인간은 아름다운 얼굴과 훌륭한 근육의 완벽한 몸매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 창조주의 숨결을 받지 않은 상태이기에 어딘지 모르게 생기 없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창조주는 공중에 떠서 바람에 휘날리는 큰 겉옷에 여러 꼬마 천사들을 거느린 채 인간을 향해 날아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인간의 왼손을 향해 힘차게 내뻗은 창조주의 오른손은 근육질의 투박한 모양을 함으로써 당신 숨결을 전하고자 하는 능동성과 역동성을 드러낸다.

반면에 아담의 왼손 모양은 연약하고 섬세한 모습이며 쭉 뻗지 못하고 약간 늘어진 상태를 보임으로써, 창조주의 숨결을 받아들여야 하는 수용적 모습을 암시한다. 미켈란젤로는 이처럼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미세한 간격이 남겨진 상태에서 멈춤으로써, 마침내 손과 손이 온전히 맞닿아 이루어지는 화룡점정의 순간이 어떠할지는 우리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그렇다면 내 삶에서 화룡점정의 순간은 과연 언제인가? 이 지상에 살아가면서도 내가 초월을 향해 힘차게 손을 내뻗는 그 순간은 과연 언제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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