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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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는 저서 정치학(기원전 328년)에서 “인간은 그 본성상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이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고립된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른 이들과의 관계성 안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적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관계적 인격성’을 고찰할 수 있다. 하나의 ‘인격’이란 독립적 개별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적 관점까지도 포함해 통합적 관점에서 숙고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인격’이라고 말할 때에는, 한편으로 개별 인간을 구성하는 고유한 정체성과 내면성,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성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고유성과 존엄성을 인식하며 독립적으로 선택과 결단을 내리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성 안에서 자유로이 자신을 내어 주고 다른 인격들과 친교를 이룰 수 있다는 통합적 관점에서, 인간은 비로소 인격적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독립적 인격체인 동시에 또한 관계적 인격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저서 나와 너(I and Thou)를 통해서 관계적 측면의 인격성을 강조하였다.

부버는 인격성의 의미를 고찰함에 있어, 인간은 ‘너’(Thou)로 인하여 비로소 참다운 ‘나’(I)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친교 안에서만 비로소 그 인격적 충만함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 역시 그의 대표작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를 통해, 인간의 관계성을 통해 드러나는 진정한 인격성에 관해 강조한다.

생텍쥐페리는 관계적 인격성을 통해서 인간의 진정한 의미 체험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인격체들 간의 관계에서 아직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를 때에는 상대방이 이 세상의 수많은 존재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만남의 관계성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잘 알게 되어 친교를 이루게 된다면, 이제는 상대방이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로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내용이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를 통해서 제시된다.

그래서 한 인간이 인생 여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만 할 때, 그 결정적 기준으로서 작용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관계적 인격성이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또한 관계성 안에서 행동의 의미를 찾고 결단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번역한 ‘영적 돌봄’(spiritual care) 분야의 명저 헬스케어 영성 제2권(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6, 250-251쪽)에 나오는,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다음 사례는 한 인간의 중요한 선택과 결단에 있어 관계적 인격성의 차원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거의 80세에 이른 그래든(Graedon) 씨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 당시의 의학적 한계 안에서 본다면, 그러한 고령의 말기 단계에서는 치료를 통한 호전에 실제적 기대를 걸기가 어려우며 오히려 더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관점에서, 여러 의사들은 그가 화학요법을 통한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에 호스피스(hospice) 센터로 가서 통증 조절을 하고 평화로운 수용을 준비해야 한다고 판단해 그렇게 권고하였다.

하지만 그래든 씨는 계속 치료를 고집하였고 결국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요법을 어렵게 시작하였다. 그 과정은 사실상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든 씨는 아무런 걱정이나 불평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병원의 간호사들은 그래든 씨가 극심한 고통 속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어느 날의 항암치료 때 병원 원목자가 그를 만나러 오게끔 배려하였다. 그뿐 아니라, 원목자와의 만남이 비밀 유지가 보장된 대화 공간에서 이루어지도록 몇 안 되는 개인 치료실 중 하나로 그래든 씨를 배치하는 성의를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하여 성사된 원목자와의 개인 면담에서, 그래든 씨는 평소의 말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 마음을 터놓고 말하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신이 그 말기 단계에서 사실상 별 기대도 어렵고 매우 고통스러운 화학요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솔직히 설명하였다.

그래든 씨의 아내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그런데 오직 그래든 씨만이 유일하게 아내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래든 씨는 호스피스 센터에 가서 평화로운 수용을 준비하기보다는, 항암치료를 통해서 자신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불사불멸성(immortality)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아내를 손수 돌보기 위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를 끝까지 돌보아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자신은 그 어떤 고통이든지 다 견디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에게 고통이 찾아올 때 그것에 대처하는 여러 다양한 방식들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래든 씨의 고통에 대한 대처 방식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한 약속에 깊이 근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실제 사례는 우리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적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관계적 인격성에 근거한 경우가 많음을 잘 보여준다, 극심한 고통의 상황에 대처하는 그래든 씨의 선택, 즉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자신의 고통과 끝까지 싸우기로 결정한 그의 사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매일같이 내리는 선택과 결단은 무엇을 위한 것이고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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