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수혈 중인 김근하씨(본인제공)
강릉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수혈 중인 김근하씨(본인제공)

[팜뉴스=최선재 기자] 20대 청년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렸다. 멀쩡했던 청년은 하루아침에 응급실을 수차례 오가고 그때마다 수혈을 받고 있다. 골수 이식을 위해 머리도 짧게 잘랐다. 그의 일상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정선군 보건소 운전직 9급 공무원 김근하 씨(29) 이야기다. 김 씨는 최근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들었다. 질병관리청 12차 예방접종 피해조사반이 백신과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 

심지어 정부는 김 씨에게 치료비 명목의 의료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자세한 이유를 알려달라고 호소했지만 질병관리청과 강원도청은 침묵으로 일관 중이다. 본지가 김 씨와의 동행 인터뷰를 통해 그 내막을 단독으로 전한다.

3일 오전 10시경 팜뉴스 취재진은 서울아산병원 서관 암병원 주사실을 찾았다. 희귀난치성 질환, 암 등 중증 환자들이 수혈 또는 항암 치료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대기실의 분위기는 무겁고 먹먹했다. 모니터 화면에 자신의 이름이 나오면 6인 입원 병동에 들어가서 링거를 통해 약물을 투여받는 방식이다. 

김 씨도 그 수많은 환자 중 한 사람이다. 다부진 인상에 하체 근육이 두드러져 보일 정도로 건장한 모습의 청년처럼 보이지만 그는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다. 지난 4월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이후 지금까지 20회 이상의 수혈을 받았고 오늘도 수혈을 받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어제도 갑자기 열이 올라 강릉아산병원 응급실에서 급하게 수혈을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수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갑자기 열이 나거나 출혈이 발생하면 무조건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감염 우려 때문에 모든 음식을 익혀 먹어야 하고 잘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

백신 접종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상이다. 김 씨는 여느 또래처럼 헬스장을 다녔고 2019년 10월 9급 공무원(운전직)으로 합격한 이후 정선군 보건소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근래에는 코로나19 환자의 검체, 자가격리자, 확진자 이송을 맡아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해온 청년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암병원 주사실 환자 대기실
서울아산병원 암병원 주사실 환자 대기실

김 씨는 “코로나19 백신이 처음 들어왔을 때 1차 대응요원으로 지정된 상태였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초기에 접종받은 이유다”며 “하지만 백신 접종 이후 피로감이 너무 심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새벽 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환자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휴식을 취한 일도 있었다. 백신 접종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백신 접종 이후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며 “부작용이 있다고 뉴스를 통해 접했는데 솔직히 제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는 골수이식을 빨리 진행하라고 한다. 피검사 결과, 각종 수치들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현재 골수이식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는 “재생 불량성 빈혈이 면역 치료로 완치되는 사례도 있지만 저는 그 단계는 지났다. 반드시 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형이 두 명 있다. 첫째 형은 이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유전자가 맞지 않고 작은 형은 반만 일치한 상태다”고 밝혔다.

그는 “형제간 반일치 골수 이식이 가능하지만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을 이식하는 게 효과적이라서 타인 이식자를 찾고 있다”며 “기증자들의 데이터를 추려서 저와 맞는 사람들이 나오면 그분들에게 최종 기증 의사를 물어본다. 기증자가 없으면 작은형과 반일치 골수 이식을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수혈 중인 김근하씨
서울아산병원에서 수혈 중인 김근하씨

■ 명확한 이유 없고 세줄 짜리 설명뿐

지난달 31일, 백신 접종 이후 일상이 무너진 김 씨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질병관리청이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통보한 것. 질병관리청 12차 예방접종 피해조사반은 정선군 보건소로 보낸 공문을 통해 김 씨 사례에 대해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probably not related, unlikely)”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그날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서 공문을 받으러 갔다”며 “인과성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나서 질병관리청에 연락을 해서 ‘어떤 근거로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느냐’라고 물었더니 정선군 보건소에서 답변을 들으라고 했다. 하지만 보건소에서는 공문 한 장이 전부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김 씨가 받은 “제12차 예방접종피해조사반 심의결과”라는 제목의 공문에 의하면 질병청은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를 단 세 줄로 설명했다. 질병관리청은 “접종 후 증상 발생 시기가 너무 빠르고, 기타 요인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코로나19 백신과 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어려움”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공문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하는데 ‘종합적’으로 어떻게 판단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근거가 무엇인지도 상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질병관리청 어디에 연락해야 될지 몰라서 콜센터를 통해 예방접종 피해조사반에 연락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그마저도 어렵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애초에 질병관리청과 정부에서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보다 심각한 환자들도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질병관리청이 저에 대해 기저질환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백신 맞기 전부터 재생불량성 빈혈 증상이 있었을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했는지 모르겠다. 전혀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김 씨 언급대로 앞서 공문엔 “기저질환이 없다”고 명시한 내용이 등장한다.  

질병관리청의 황당한 대응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와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중순 백신 접종과 인과성 근거가 불충분해도 환자들에게 최대 1000만원의 의료비를 지원키로 했지만 김 씨 사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 푼의 의료비도 지급할 수 없다는 게 질병관리청의 입장이다. 

정부 지침에 의하면 1)인과성이 명백한 경우 2)인과성에 개연성이 있는 경우 3) 인과성에 가능성이 있는 경우, 4-1) 예방저종 후 이상반응 발생 시기가 시간적 개연성이 있으나 백신과 이상반응에 대한 자료가 불충분한 경우에만 의료비 1000만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김 씨 사례에 대해 인과성 평가의 4번 후단(4-2) “백신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라고 최종 판단했다. 김 씨는 정선군 보건소로부터 ‘자료 불충분’이 아닌, 다른 이유에 의한 재생불량성 빈혈이 발생했다고 안내를 받았다. 

김 씨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4-2에 해당해서 저는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며 “하지만 다른 이유에 의한 가능성이 높은 경우라는데 질병관리청은 그 가능성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종이 한장 달랑 한 장 보내고 그만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지금까지 치료비가 500만원이 들었다. 피검사에 7만원, 수혈 10만원에 응급실 비용도 상당하다. 백신 접종 이후 입원 기간만 30일이 넘는다. 골수이식 초기비용도 최소 700만원 정도가 드는데 치료비조차 지원해주지 않으니 눈앞에 캄캄하다”고 전했다.

김 씨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아산병원에서 적혈구 수혈을 받았다. 병원에서 보낸 시간만 약 8시간이었다. 목요일 외래 진료가 있을 때마다 인근에 숙소를 잡고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 일상이다. 

강원도 정선으로 향하는 길, 그는 팜뉴스 취재진에 문자 메시지를 통해 “감염 우려로 항생제를 추가로 처방을 받았다. 골수 기증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오전에 혈소판 수치가 올라서 몸이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입원 예약 중이다”고 밝혔다. 그의 입원은 벌써 세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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