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백보람 리더
사진. 백보람 리더

코로나19는 제약‧바이오산업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의약품 연구도 마찬가지다. 연구 분야도 코로나19의 매서운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코로나19는 기존 의약품 연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를 요구했다. 연구부터 출시까지 모든 절차가 ‘패스트트랙’으로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이로 인해 주목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AI)이다. 이미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어느 분야든 이 단어를 빼놓고 이야기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제약 연구에서 AI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미 AI는 제약 연구에 적극적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누군가는 이미 AI가 선별한 후보군으로 숨겨진 진주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AI가 제약·바이오산업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팜뉴스가 송년 기획으로 준비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제약·바이오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백보람 디어젠 리더를 선정한 이유다. 팜뉴스 취재진은 서울 강남 소재 디어젠 기업부설연구소에서 백보람 리더를 만났다.

≫ “대부분 제약사, AI 기술 도입 필요성 인지”

“제약연구 및 신약개발은 크게 본다면 타겟부터 후보물질 발굴까지 이르는 연구의 영역과 임상과 허가 과정이 중심이 되는 개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AI는 연구 영역과 개발 영역 모두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핵심 기술이 될 것입니다.”

크지는 않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제약 분야에서 AI의 역할에 대한 백 리더의 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백 리더의 말대로 AI는 제약 분야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는 “연구 분야에서는 유전체나 전사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타겟이나 바이오마커를 찾아내는 과정이 AI를 통한 제약연구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며 “뿐만 아니라 임상 분야에서도 진단이나 예후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AI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자 의료데이터를 활용한 AI 학습 과정을 통해 임상의 성공률을 높이거나, 처방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또 하나의 부류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디어젠의 경우 주로 연구영역에 집중하고 있다”며 “치료 타겟의 발굴부터 후보물질 도출하기까지, 타겟 선정 및 발굴을 주력으로 하는 ‘디어트랜스(DearTRANS)’와 유효물질 발굴의 ‘디어DTI(DearDTI)’, 후보물질 최적화의 ‘몰EQ(MolEQ)’ 등 3개 모델을 구축, 이를 중심으로 제약연구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 모든 과정을 ‘패스트트랙’으로 진행하려는 시도도 있다. 백 리더는 스탠다임의 예를 들었다. 스탠다임은 디어젠과 마찬가지로 AI 기술로 바이오연구를 수행하는 벤처기업이다.

백 리더는 “스탠다임의 경우 비알콜성지방간(NASH) 적응증 약물을 직접 개발·생산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최근 제약분야 AI기업들은 약품을 직접 생산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제약사와 협업해 연구개발부터 생산까지 이어지는 패스트트랙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기존 제약사들의 경우 AI의 필요성에 대해 자각을 하고는 있지만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입을 추진하기에는 인프라 구축 등 문제로 주저하는 분위기”라며 “아무래도 스타트업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제약사가 의약품 개발에서 AI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또 “사실 글로벌 제약사들도 회사 내에서 직접 AI를 개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며 “아톰와이즈나 베네볼런트AI, 인실리코 메디슨 등 AI기업과 협업을 하는 식으로 AI를 접목하고 있다. 앞으로 국·내외 모두 AI 관련 스타트업과 벤처의 역할이 중요하게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AI, 코로나19 사태 속 ‘약물 재창출’ 효용성 입증

사실 디어젠은 이미 코로나19 의약품 후보에 대해 ‘천기누설’을 한 경험이 있다. AI를 통해 기존 항바이러스제 중 렘데시비르가 가장 효과적인 코로나19 치료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 이후 렘데시비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승인을 받은데 이어 정식승인까지 받으면서 코로나19 치료제로 인정받았다.

백 리더는 “AI를 통해 렘데시비르의 효용성을 예측한 것은 디어젠이 유일했다”며 “베네볼렌트 AI에서 예측했던 바리시티닙 또한 최근 FDA의 긴급승인을 받았고, 우리가 예측했던 또 다른 치료제인 아타자나비르도 3건의 임상이 진행 또는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시대에서 AI는 제약산업 중 어느 분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까.

백 리더는 그 답으로 ‘약물 재창출’을 꼽았다. 기존 약물 중 코로나19 치료에 가장 적합한 약물을 AI를 통해 예측한 것이다. 앞서 말했던 렘데시비르 예측 등 또한 모두 약물 재창출과 관련돼 있다.

백 리더는 “약물 재창출의 경우 임상1상을 생략할 수 있어 약물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최대한 빠른 기간 내에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약물 재창출이 초기 치료제 연구의 주를 이뤘다”고 말했다.

또 “물론 아직까지는 AI를 통해 예측된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나 임상이 직접적으로 진행된 경우는 거의 없다”며 “하지만 AI 기술을 통해 약물을 예측한 논문이 임상 연구에서 인용되는 것으로 보아 AI 예측이 적어도 참고할 만한 자료로는 인정받았다고 조심스레 말할 수 있다. 브라질에서 진행 중인 아타자나비르 임상 연구도 우리 논문을 인용했다”고 설명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발 시간 단축의 열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신약 개발에서 AI가 맡을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바로 ‘시간 단축’이다. 다양한 시도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빠르게 처리해 후보군을 추리는 데 있어 AI는 가장 큰 강점을 지닌다.

백 리더는 “아무런 기준도 없는 상황에서 어떤 타겟을 노릴지, 어떤 약물을 먼저 확인할지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며 “AI를 활용하면 그 선택지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최소한 ‘패스트-페일(fast-fail)’ 전략은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코로나19를 통해 후보군을 빠르게 선별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속도만큼은 인정받았다”며 “물론 AI 기업들이 자사 모델의 정확성을 더욱 끌어올려야 한다. 모델 정확도가 향상될수록 앞으로 신약 개발에 AI가 더욱 중요한 역할로 기여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 디어젠은 여러 제약사와 ‘연합작전’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옵티팜과 함께 간암 치료용 백신에 나서고, SK케미칼과는 최근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는 등 코로나19 치료제를 넘어 다양한 의약품 창출에 나서고 있다.

백 리더는 “우리 회사를 비롯해 제약분야에 특화된 많은 AI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바이오 연구시설에 대한 약점을 안고 있다. 인력과 자원이 한정돼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는 까닭”이라며 “협업은 이런 구조적 약점을 해결할 열쇠가 된다. 앞으로 AI 기업이 플랫폼을 파트너에 제공하고, 파트너는 인프라를 이용해 생물학적 검증 및 실험을 진행하는 ‘윈-윈’ 전략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헀다.

이어 “다만 아직 AI를 통해 직접적인 약물 도출이나 임상 진입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상황”이이라며 “현재로서는 초기적인 협업 단계다. 기업에 따라 개량신약이나 복합제를 주력으로 하는 곳도 있고, 신약이나 약물 재창출을 중점적으로 하는 곳도 있다. 기존 기업들도 AI 모델을 살펴보고 자신들의 연구개발에 어떻게 써야할지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백 리더는 마지막으로 AI 관련 제약업계 전망에 대해 “앞서 말했지만 분명 제약업계도 AI 기술 도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AI 기술 관련 팀이나 태스크포스 등을 구축하는 등 자체적 혹은 외부기술을 평가하기 위한 AI 전문 부서를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AI 기업의 경우 자기 PR과 정확한 정보전달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기업들은 대부분 AI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도를 갖고 고민하고 있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AI 모델이 제약업 중 어느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안내해 효용성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최대한 다양한 협업루트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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