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1-26 13:00 (목)
국적은 ‘중국’, ‘일본’ 약학대학 졸업, 개국은 ‘한국’에서
국적은 ‘중국’, ‘일본’ 약학대학 졸업, 개국은 ‘한국’에서
  • 김응민 기자
  • 승인 2020.10.30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료에는 국적이 없다”라는 말 몸소 실천하는 약사 되고 싶어
향후 의료서비스 사각지대 있는 중국인들 위한 봉사활동 할 것

 류이닝 약사(서울 안강온누리약국)

사진. 류이닝(LIU YINING) 약사
사진. 류이닝(LIU YINING) 약사

일본에서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노동후생성에서 약사 자격증을 취득한 다음 우리나라에 들어와 다시 보건복지부 약사 자격증을 딴 ‘중국인 약사’가 있다. “의료에는 국적이 없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류이닝(LIU YINING) 약사의 이야기다. 팜뉴스는 최근 서울 대림동에서 개국한 류이닝 약사를 만나 이색적인 경력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프로필이 굉장히 독특하다

중국 선양(SHENYANG)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 입학 전에 1년간 어학연수 기간을 가졌고 이후 대입시험을 거쳐 큐슈 약학대학에 진학했다. 큐슈 약대를 졸업한 후에는 일본 노동후생성에서 약사면허증을 취득해 후쿠진(Fukujin) 제약 그룹에서 근무하며 조제 및 복약지도를 담당했다.

유학 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일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한국에서도 약사로서의 업무를 하고 싶어 구직 활동에 나섰지만, 일본에서 취득한 약사면허증은 사용할 수 없어 다시 한국 보건복지부의 약사면허증을 취득했다.

≫ 중국에서도 약학대학을 진학할 수 있었을 텐데, 일본 유학을 결심한 배경이 궁금하다

학생 시절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문득 화장품을 개발하는 쪽으로 진로를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련 직무를 알아보니 화장품 개발이 약학과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약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마침 대입을 준비하던 수험생 시절 중국 내에선 ‘해외유학’ 붐이 일어났었다. 개인적으로 약학을 전공하게 된다면 의약학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숙부가 일본에서 의사로 활동을 하고 계셨던 터라 자연스럽게 일본 유학을 결정하게 됐다.

≫ 일본에서 학위 취득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고등학교 시절에 나름 일본 유학을 준비하기는 했었다. 영어 외에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고 어느정도 열심히 공부한 덕에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는 일본어능력평가 2급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일어가 어느정도 준비된 상태에서 큐슈 약대를 진학했기에 정규 교육과정을 쫓아가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일본 노동후생성 약사자격증 취득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으나 할만한 도전이었다.

≫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 약사자격증 취득 과정 중에 힘든 점이 있었다면

사실 일본 유학보다 한국에서 약사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이 제일 힘들었다.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에는 일본어가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던 상태였고,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대입시험을 보기 전에 1년간 어학연수 기간을 거쳐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약사자격증 공부는 이러한 과정들이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약학 용어들이 제일 골머리를 썩였다. 영어나 일어로 배웠던 약학 지식들을 가뜩이나 낯설었던 한국어로 새롭게 공부해야 했던 까닭이다.

≫ 보훈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눈에 띈다. 설명을 부탁한다

사실 급여만 놓고 보면, 제약회사나 일반 약국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 훨씬 벌이가 좋다. 보훈병원은 아무래도 국가기관이다보니 상대적으로 보수가 적은 까닭이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약학을 공부하면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고, 약사자격증을 취득해 현장에서 약사로 근무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더 굳건해지게 됐다.

보훈병원은 기관 특성상, 내원하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국가유공자이거나 그 가족들, 그리고 고령의 어르신들이다. 국적에 상관없이 나라를 위해서 한평생 헌신하신 분들에게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마음에 보훈병원 약제실에 지원하게 됐다.

≫ 단순히 의지만으로 되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채용과정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 국가보훈처 산하 한국보훈의료공단에서는 그간 외국인을 약사로 채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선례도 없었고 애로사항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 보건복지부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의료에는 국적이 없다’는 일념으로 도전한 모습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다만, 외국인이라고 해서 특례를 받은 것은 없다. 다른 지원자들과 동일하게 1차로 서류심사를 진행했고, 2차에 약국 실·국장들과의 실무진 면접을 겨처 3차에 약국장 및 인사담당자 등의 임원면접을 통과해야 했다.

다행히, 일본 약학대학에서 연구한 내용과 약국 및 일본 제약회사에서의 근무 경력, 그리고 앞서 언급한 부분들을 인정받아 대전보훈병원 약제실 과장에 최종 합격할 수 있었다.

≫ 보훈병원에서는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했는지?

보훈병원에서의 근무는 일반약국에서 근무하던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일반약국에서는 감기약이나 위장약과 같은 비교적 단순하고 흔한 질병들이 많았고, 처방 내용도 적었다. 하지만 보훈병원을 내원하는 환자 대부분은 고령의 어르신들이었기에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특히 상해를 입은 국가유공자들은 고려해야 할 특이한 기저질환들이 있었다.

약사가 약을 처방할 때는 반드시 환자가 어떤 기저질환을 갖고 있고, 또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파악해서 약물 간의 충돌이나 이상 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일반약국에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적었지만 보훈병원은 그렇지 않아, 처음에 이 점이 조금 힘들었다.

또한 환자들이 고령 등의 이유로 잦은 내원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한 번에 대용량의 약을 처방하는 경우도 어려운 점 중 하나였다.

≫ 보훈병원에서 근무하다 개국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보훈병원에서 한국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근무하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중국 동포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타지 생활이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몸이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타향살이를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동포들에게 좀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또한, 보훈병원에서 일하면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한 것도 개국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한국말이 유창하지 못해 보훈병원의 환자들에게 복약지도를 할 때 종종 어려움을 겪은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처럼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국인들은 더욱 힘들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 안강온누리약국
사진. 안강온누리약국

≫ 안강온누리약국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안강(安康)’이라는 말은 ‘평안하고 건강한 삶을 염원하는’ 의미가 있다. 온누리는 순한글인 ‘온세상’이란 뜻으로, 온세상 사람들이 평안하고 건강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약국 이름을 지었다.

대림동의 유동인구가 적지 않은 편이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찾는 사람이 조금 뜸한 편이다. 하지만 약국을 방문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복약지도나 상담을 세심하게 진행하고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당장은 개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 다양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의료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중국인들을 직접 찾아가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늘 헌신하며 살고 싶다.

-류이닝 약사 약력-
2003년 일본 큐슈대학교 약학대학 입학
2008년 일본 약사 면허증 취득 후 Fukujin 제약 그룹에서 조제 복약지도 담당
2010년 결혼 이민 후 거제도에서 신혼생활 시작
2011년 대한민국 약사 면허증 취득 후 거제프라자 약국 근무(고윤석 거제시약사회장님 운영)
2014년 한국보훈의료복지공단 대전보훈병원 약제실 과장 근무
2020년 서울 안강온누리약국 개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