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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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현장의 영적 돌봄(spiritual care)은 실로 놀라운 힘을 드러낸다. 오랜 병고로 인해 쇠약해진 환자의 육체적 상태가 본래 상태로의 자연적 복원 능력 바깥으로 일탈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이제 영적인 차원에서 이를 대면하고 수용하면서 보다 근원적인 복원을 시도하게 된다.

거룩한 실재와의 초월적 의미 통교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생명 안에 내재하고 있던 근원적인 온전함(wholeness)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처럼 영적 돌봄을 통해 이루어지는 초월적 의미 통교 안에서 사랑과 연민의 체험이 가능해지면, 쇠락해진 육체적 상황 속에서도 환자는 자신이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근원적 존재성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영적 돌봄을 통해 이루어지는 역설적인 전인적 통합이다. 이처럼 본래적 온전함과 충만함의 체험을 하게 된다면, 환자는 비록 육체적으로 쇠약해진 상태, 혹은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조차도 자신의 품위와 존엄성(dignity)을 되찾고 내적 평화(inner peace)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영적 돌봄이 지향하는 ‘온전함’은 곧 사회적 차원의 ‘평화’ 개념과 연결된다. 사실, 구약 성경에서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명사 ‘샬롬’(shalom)은 어원적으로 ‘충만함’(fullness)이나 ‘온전함’(wholeness) 혹은 ‘조화’(harmony)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의 회복은 곧 온전함의 체험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 하느님 안에서 평화와 존엄한 휴식을 누리던 에덴동산의 상태(창세기 2장 참조)가 바로 ‘충만함’(shalom)의 이상적 상태를 보여 준다.

어떤 의미에서, 의학적 치료와 영적 돌봄 모두 궁극적으로는 치유를 통한 ‘온전함’을 지향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를 ‘치유한다’(heal)는 말 자체가 어원적으로는 ‘온전하게’(whole) 한다는 뜻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적 돌봄은 사회적 통합과 치유를 위해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 보건의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돌봄의 실천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사실, 오늘날의 사회야말로 온갖 정보, 그것도 진짜와 가짜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들이 횡행하며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삶에서 유대감(connectedness)과 관계성(relationship)을 통한 의미 통교는 점차 사라져가고, 우리는 정보의 조각들 속에서 방황하며 헤매게 된다.
미국의 실존분석 정신치료사인 롤로 메이(Rollo May, 1909-1994)는 자신의 저서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Man’s Search for Himself)에서, 현대인들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살아가는데, 특히 타인의 시선과 대중 여론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자아를 상실하고 불안과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이러한 외부 환경이 더욱 증가됨으로써, 한 인간의 인격적인 삶,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상호 인격적 관계는 점점 더 위협받게 된다.

이처럼 인간들이 소외되고 갈등을 겪는 사회 안에서 영적 돌봄이 지향하는 인격적 관계성과 유대감, 그리고 치유와 온전함 개념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만일 보건의료 현장에서의 영적 돌봄 실천이 사회적 차원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면, 사회 안에서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성 정립에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영적 돌봄을 통해 이루어지는 환자와 돌봄제공자(caregiver) 사이의 진정한 인격적 만남은, 마치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가 말한 바와도 같은 새로운 관계성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상대방을 대상화나 객체화, 혹은 사물화 시키는 기능주의적 만남을 넘어서, 인격적 차원의 새로운 나-너(I and Thou)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때, 나-너의 관계성은 동등한 인격적 존재자들 간의 만남을 의미하며, 그 만남은 결국 영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이처럼 ‘관계 속의 존재’(persons-in-relation) 개념은 우리의 인격성이 보다 온전함(wholeness)을 지향하게 해준다.

여기에서 ‘포용’(inclusion) 개념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는 타인의 개인적 실존에 자신의 실존을 관련시키고 포함시키게 됨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서 상호인격적인(interpersonal) 관계성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처럼 환자와 의료진 그리고 직원 모두가 ‘포용성’을 통해 인격체로서 상호 통교하는 새로운 문화가 보건의료 현장의 기능주의적 맥락을 넘어서 더욱 확산되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제기된다. 이는 최근의 보건의료 현장에서 급박하게 제기되는 영적 요구이다.

이처럼 영적 돌봄을 통해 체험하게 되는 인간 관계성의 새로운 인격적-영적 차원은, 이제 의미심장한 사회적 함의와 파장을 지니게 될 것이다.

나아가, 영적 돌봄의 실천은 사회 안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돌봄의 감수성을 증대시키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의 가치를 함양시킬 수 있다. 사랑 받은 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보건의료 현장에서 영적 돌봄의 가치를 깊이 느끼고 체험한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이제 자신의 삶의 구체적 현장과 사회의 각 분야 안에서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보건의료 현장에서의 영적 돌봄은 언젠가 사회적 통합과 치유를 가능케 하는 아름다운 씨앗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이 시기에, 이러한 자각은 더욱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우리 삶의 여러 현장에서 영적 돌봄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욱 큰 사명감을 가져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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