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학술정책팀 신용수기자

올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의 주요 키워드는 세 가지였다. 코로나19, 독감백신 파동, 그리고 의사 파업.

특히 의사 파업으로부터 비롯한 사상 초유의 ‘국시 거부’ 사태는 국감에서도 화제가 됐다.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의 경우 국감 증인출석에 앞서 다른 의료원장들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학생들에게 국시 재응시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장도 이날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재응시 기회를 꼭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박 장관은 이날 국감 현장에서 “이 문제는 정부와 의료계의 관계가 아니라 대국민과의 관계라 생각한다”며 “정부가 1년에 수백 개 치르는 국가고시를 어느 한 시험만 예외적으로, 그것도 응시자 요구에 의해 시험이 거부된 것에 재응시를 허용한다는 게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국민 여론도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8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국시 접수 취소한 의대생들에 대한 재접수 등 추후 구제를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청원 기간인 한 달 동안 57만1995명의 동의를 받았다. 그만큼 많은 국민이 의대생에게 국시 재응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불공정’으로 규정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의료 공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 공백은 의료계가 국시 재응시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면서 내놓는 명분 중 가장 큰 요소다. 한 의대생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사과문과 병원장들의 대국민 사과도 국시 재응시의 명분으로 의료 공백을 내세웠다.

실제로 의료 공백은 발생할 것이다. 당장 내년 발생할 수천 명의 인턴 공백은 보건당국 입장에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이는 레지던트 공백으로 이어지면서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공정성 확립도 국가 운영에 중요한 화두 중 하나지만, 의료 공백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특히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에 기자는 국민과 의료계에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바로 ‘국시 재응시 기회를 주되 전공과목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꼭 필요한 감염내과를 비롯해 흉부외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과목들은 의료 공백이 발생하면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더구나 이들 과목 중 대다수는 일명 ‘기피과’로 불리는 비인기 과목으로 매년 인원 미달이 부지기수인 상황이다. 이번 사태 없이도 이미 의료 공백이 발생한 것.

반면 피부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 등 상대적으로 생명에 지장이 덜한 과목들은 의료 공백이 덜 시급하다. 일반적으로 이들 과목은 인기 과목인 덕분에, 당장 의료진 수급도 기피과에 비해 용이할 것이다.

따라서 재응시 기회를 주고 국시를 거부했던 의대생들에게 구제 기회를 주는 대신, 의료 공백이 우려되는 필수과목으로 진로를 제한해 의료 공백을 막자는 것이다.

만약 의사 사회가 진정 의료 공백을 우려해 국시 재응시를 주장했다면, 이 방안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의료계가 말한 대로 꼭 필요하지만 인력난을 겪고 있는 필수과목의 인력을 보강하고 의료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의대생들은 버려질 1년의 세월을 확보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국민도 의료 공백을 메우겠다는 의대생의 진정성을 인정할 것이다.

물론 이 방안의 현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기자도 잘 알고 있다. 헌법 15조가 명시한 ‘직업의 자유’를 위배할 소지가 있는 까닭이다. 기자가 이 방안을 제안한 이유는 그동안 의대생과 의사 사회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을 꼬집고 싶어서다.

설령 기자가 제시한 방안이 의제로서 논의된다고 해도, 의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사견이지만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본다. 의사 사회 일각에서 반성의 자세 대신 알력 행사를 공언하고 있는 까닭이다.

한재민 대한전공의협의회 신임 회장은 12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국회의 결정에 대해 범의료계와 연대해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대전협 관계자는 “15일 국시원 국감과 20일 종합감사에서 명확한 답변이 없을 시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도 했다. 그들의 발언에서 싸늘한 국민 정서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이 의사 파업에 대한 책임을 의대생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민은 정부에게는 공정성과 형평성을, 의대생에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다.

의대생들은 병원장과 의사, 전공의 선배 뒤에 숨는 대신, 앞으로 나서 오판을 인정하는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 현재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해법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따른 책임을 받아들이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 뒤 국민에게 용서를 기다리는 방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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