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는 오랫동안 교류해 왔던 지인의 소천 소식에 애통함과 함께 과학도로서 자책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죽음이 가까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과학적·약료적 선택이 제한된 우리의 환경과 그에 직면한 환자들이 느꼈을 절망을 생각할 때 약과학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게 한다.

올해 9월 22일 통계청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9년 자살사망자는 1만 3799명으로, 2018년보다 129명 증가하였으며,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자 수)은 26.9명으로 나타났다.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총 사망자가 428명(10월 9일 기준)이고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9년 사망원인 통계에서 5위에 위치해 있음을 볼 때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표1. 우리나라의 2019년 주요 사망원인 [출처: 2020년 9월 통계청 보도자료-사망원인 통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에서 담당부서는 우리나라의 자살이 사회 구조적, 개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주된 요인을 어느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해석과 함께,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자살의 핵심적 위험 요인(보건의료 서비스에의 접근성/ 자살수단에 대한 접근성/ 자살사건에 대한 미디어의 부적절한 보도,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편견/ 재난‧전쟁 등, 문화적 부적응, 사회적 차별, 트라우마, 학대 등)을 첨부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를 타개할 획기적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약료적 대책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자살과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질환이 “우울증”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 조사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자의 약 60%가 주요우울증이나 정서 장애(mood disorders)를 앓았던 것으로 나타났고, 가족력 조사연구에서 자살과 우울증간에 유전적 요소가 관여함을 제시하였다.

이에 근거하면, 자살 사고나 충동을 질병으로 인식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며, 우울증을 잘 조절한다면 자살률을 줄일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수십 종의 항우울제들이 임상에서 사용되고 있음에도 자살률은 늘어나고 있다. 이는 현 항우울제의 한계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FDA는 곤혹스럽게도 우울증의 전통적 약물 치료과정에 자살 시도가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다처방되고 있는 세로토닌선택적재흡수억제제(SSRI)나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재흡수억제제(SNRI) 모두 자살시도를 증가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 투약 후 1주일 이상 대개 2∼4주가 지나야 항우울 효과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다른 약료 방안이 없는가?

전통적인 항우울제들의 표적은 모노아민성 신경(세로토닌성 신경과 노르에피네프린성 신경)이었지만, 2008년 이후 글루타민성 신경이 주요 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16년 Todd 연구팀이 Nature지에 “NMDAR inhibition-independent antidepressant actions of ketamine metabolites”을 발표하였는데, (R,S)-Ketamine과 대사체들이 신속항우울작용을 나타내며, 그 효과는 NMDA-수용체 길항작용과 AMPA-수용체 효능작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Esketamine(에스케타민)의 항우울-효용성이 현실화되었고 그 기전은 아래 그림과 같이 정리되었다.

사진1. Esketamine의 항우울 작용 기전 [출처: IntJ Neuropsychopharmacol, 2019, 22(2): 119–135]

그 이후 지속적 임상연구에 기초하여 2019년 미국에서 우울증환자에게 다른 항우울제들과 함께 에스케타민(Esketamine)의 사용이 승인되었고, 올해 J Clin Psychiatry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24명의 성인 주요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임상연구에서 비강스프레이(nasal spray)를 통한 에스케타민의 투여로 항우울효과가 4시간만에 발현되고 자살생각을 가진 우울증환자의 증상이 개선되었다.

올해 8월 미국 FDA는 자살사고의 단기치료에 에스케타민의 사용을 승인하였고, 투약 후 바로 효과가 나타나고 자살충동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항우울제가 시장에 도입되었다. 현재까진 다른 대체약물이 없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에서는 비싼 가격 때문에 에스케타민의 활용이 거부되었다.

On-line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2개의 스프레이(28mg) 가격이 656불이다. 사람 목숨의 가격을 정할 수 없기에 의약품의 가격-효과성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다. Ross 등은 올해 7월 Psychatric service에서 비용-효과성을 고려할 때 현재의 1회 투여 가격(a current price of dose)인 240$은 너무 비싸다고 지적하였다. 자살충동은 외부로 쉽게 드러나는 증상이 아니고 환자 본인만의 고민인 경우가 많음을 고려하면 하루가 급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아직 에스케타민이 도입되지 않았다.

현재 전세계 의료진과 약과학자들이 코로나-19에 대항하여 전쟁 중이다. 그 과정에 어쩔 수 없이 아까운 생명들이 희생되고 있고, 그에 따른 경제적 피해와 후유증은 헤아리기 어려운 수준이다.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 또 다른 그늘에선 소외된 사람들이 목숨을 버리고 있다.

코로나-19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살이라는 낚시 바늘에 걸려 어둠속으로 끌려가는 생명들도 지켜야 한다. 만약,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그분이 에스케타민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아니 13,700여명의 생명들이 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최소한 올해 코로나-19로 돌아가신 428명보다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여전히 당분간은 에스케타민을 사용할 수 없고, 어쩌면 비용-효과성이라는 숙제를 풀지 못해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비용-효과성도 결국은 약과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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