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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 반쪽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콩알 반쪽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 최선재 기자
  • 승인 2020.09.21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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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텍사스’ 약사 이모, 이미선 약사 인터뷰
집창촌 한복판 ‘건강한약국’ 25년째 운영
“이모와 언니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저의 소명”

이미선 약사(건강한약국)

사진. 건강한약국 이미선 약사

그곳은 불편한 땅이다. 누군가 살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은 곳이다. 골목 어귀에는 빨간색 글씨로 ‘청소년 출입금지’라는 간판이 굵은 실들과 함께 걸려있다. 낮에는 골목마다 그늘이 드리워 을씨년스럽고 밤에는 불빛이 넘쳐나지만 왠지 모를 불편감에 피하는 장소다. ‘미아리 텍사스’ 이야기다.
 
한국과 미국 지명으로 불리는 이곳 사람들은 그 이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다. 거리를 돌아다니면 이모로, 골목 안쪽에 살고 있으면 언니(성매매 여성)로 불린다. 몸이 부서지고 마음이 찢겨도 드러내놓고 호소하지 못한다. 툭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내편’도 없다.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한다는 수치심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 수 없는 탓이다.

하지만 이곳에도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현대판 사마리아인’이 있다. 그 주인공은 이미선 약사(59. 숙명약대)다. 그는 8평 남짓한 약국에서 수년 동안 자학과 절망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신산한 삶을 이어가는 여성들을 진심으로 위로해왔다. 본지는 최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건강한 약국에서 이미선 약사를 만났다.

미아리 텍사스로 향하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길음역 10번 출구를 나와서 수선집을 지난 순간 검정색 코팅지로 입구 전체를 두른 가게들이 보였다. 제법 넓은 골목 사이사이로 빼곡히 들어찬 또 다른 가게들의 유리문에도 검정 빛깔 뿐이었다. 물론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간판 대신, 술값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화려한 불빛이 보이는 밤과는 달리, 낮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골목 분위기도 무겁고 어두웠다. 하지만 건강한 약국을 도착한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약국 앞에 줄지어 늘어선 화분들이 보였다. 그 속에서 피어난 식물들은 약국 외벽을 덮을 만큼 자라 있었다. 식물들은 하얀색 간판과 빨간색 벽돌과 함께 어울려 생기를 내뿜었다. 약국 문 왼쪽에는 ‘건강한 상담센터’라는 나무 간판이 보였다.

사진. 건강한약국 외부 모습
사진. 건강한약국 외부 모습

생기 넘치는 ‘건강한 약국’ , 책방과 상담센터 겸비

이미선 약사는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지만 약국 안쪽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흔히 보던 약국과는 달랐다. “책 빌려드립니다. 2주일 2권 가능^^, 1주일 연장 가능^^”라는 문구와 함께, 책꽂이에는 만화 ‘신의 물방울’부터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와 같은 갖가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약국이 상담센터와 책방을 겸하고 있는 것.

사진. 상담센터 표지

“안녕하세요! 이미선 약사입니다”

곧이어 도착한 이미선 약사의 또렷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약국 안에서 울리는 경쾌하고 밝은 CCM 음악과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약국 안팎의 이색적인 풍경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그의 모습은 더욱 밝아 보였다.

‘미아리 텍사스 88번지’는 이미선 약사의 고향이다. 이미선 약사는 “어렸을 적 정릉천에서 자주 놀았는데 우리집 주변에 술집이 많았다”며 “엄마는 친해지지 말라고 했지만 학교를 다녀오는 길이면 언니들이 먹을거리도 매일 사주고 용돈도 주고 저를 예뻐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친했던 언니가 청산 거리를 먹고  자살했다”며 “그때 시신을 처음 봤고 죽음을 목격했다. 대학생 애인에게 등록금도 대줬는데 배신을 당했다는 얘기를 뒤늦게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미선 약사의 저서 ‘미아리 서신’을 살펴보면 더욱 구체적인 내용이 등장한다. 책에는 “우리 집 바로 아래 술집에서 일하던 착한 언니가 시커멓게 죽은 입술에 축 늘어진 몸으로 병원으로 실려 가던 모습을 봐야 했다”고 쓰여 있다.

그는 “언니들은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며 “시골에 돈도 보내주고, 대학을 다니는 동생 학비도 보내줬다. 술장사해서 돈을 벌지만,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게 아니라. 가족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세상은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했지만 어린 제 눈에 보기에는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도 언니들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미선 약사가 훗날 이들의 편이 되기로 결심한 계기다.

내 고향 ‘미아리’에서 ‘언니들’ 편이 되고 싶었다

1996년 이미선 약사는 고향인 미아리로 귀환했다. 그는 “1994년에 제가 아이 아빠랑 헤어졌다. 아이도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아이도 키워야 했고 돈도 벌어야 했다. 그러려면 아이를 누구에게 맡겨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이 여기 살고 계셔서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며 “다른 동네로  가기에는 가진 돈이 없었다. 우리 약국은 보시다시피, 주변에 병원이 없어 똑 떨어진 공간이다. 일하기 편했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24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미선 약사는 이곳에서 ‘약사 이모’로 통한다.

힘들고 지친 이웃들이 약국을 찾아 ‘차마 꺼낼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미선 약사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소외된 이들의 삶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끝까지 들어주었다. 점차 이들은 마음을 이미선 약사에게 열었다.

그는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제가 좀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고 나니, 보다 편하게 이곳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며 “가족 이야기는 함부로 먼저 물어볼 수 없었다. 다만, 약을 지으러 오다가 말끝에 ‘엄마가 아프신데, 드실만한 영양제가 없을까’라고 할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 제가 ‘어디가 아프신데’ 하면서 넌지시 물으면 구체적인 이야기를 했다”며 “점점 단골 친구들이 생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보통 오전 10시 전후 오후 4~5시 이후 많이 찾아온다. 복약지도를 하면서 소통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고마을 정도”

저서 ‘미아리 서신’의 한 대목을 살펴보면 이미선 약사는 단순히 약 처방을 넘어서서, 온몸으로 이들과 소통 중이다.

“현아 씨는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과 마음이 모두 굳어있는 사람이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뭉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온몸의 세포가 다 돌처럼 굳어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팔을 만지고 등을 만지면서 긴장한 그녀의 몸들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그녀가 속으로 흘려온 눈물이 제 혈관 속으로 전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찌할 수 없음에 많이 미안했다.”

보통 사람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이미선 약사가 이때 느낀 감정은 미안함이다. 이미선 약사는 “이 정도까지 온몸이 굳어버리려면 세상과 전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며 “세상과 전쟁을 했고 그 세상에 저도 속해있다. 인생을 앞서간 선배로서의 넓은 의미의 미안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교 시절 학생운동으로 수감생활을 했다”며 “같은 방에 마사지하시는 분이 있어 보고 배웠다. 저는 손끝이 야물다. 만져주면 정말 좋아하고 시원해한다”면서 크게 웃었다

이미선 약사는 이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부 구구절절이다”며 “죽지 않고 살아주는 게 고마울 정도다. 친해진 업소 주인이모들에게도 가끔 듣는데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보통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치면 이를 함께해주고 충격을 완화해줄 완충재가 있다”며 “쉽게 말해, 가족 친구 등등 도움받을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그런 것이 하나 없다. 상처를 오롯이 혼자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미성년자 출입금지'라는 표지가 보인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 약사님이 처음입니다”

이미선 약사는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해주기 위해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땄다. 후원금을 모아 다양한 방법으로 성매매여성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상처받은 이들의 몸뿐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

그는 “완충재가 되어줄 주변 환경이 없는 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저는 완충의 역할 혹은 친구들의 편이 돼서 콩알 반쪽이라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기 있는 친구들이 몸이 약해지는 경우가 정말 많다”며 “면역력이 떨어져서 고단위 종합비타민제를 먹으면 좋은데,,,그 몇만 원을 만들기 어려운 친구도 있다. 돈이 없어서 약을 못 사는 친구들에게 여러 경로로 저희 활동을 지지하는 분들이 보내준 후원금이나 후원품을 나누기도 한다. 이번에도 여성질 유산균 제품을 후원받았다”

사랑의 손길은 얼어붙은 이들의 마음을 녹였다. 이미선 약사는 “10만 원 정도의 유산균 제품을 한 친구한테 주었더니 막 울었다”며 “왜 우냐고 물었더니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질이 워낙 약한 애라 걱정했었는데 며칠을 사용하더니 몸 상태가 좋아진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선 약사를 향해 커피를 건네면서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이렇게 선물을 해준 사람은 약사님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진심을 담아, 보답을 바라지 않은 사랑을 나누는 것. 이미선 약사가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다.

약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를 마치고 건강한 약국을 나왔다. 비가 줄기차게 내려 골목 곳곳의 풍경은 더욱 어두웠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순간, 약국 외벽에 걸린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의 시 문구가 가슴에 남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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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2020-09-21 09:28:16
사랑이 식어가는 세상입니다. 이런 기사 감사합니다.
좋은 선한 취재 힘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