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의 파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의사 사회가 4대 악(惡)으로 규정한 정책 중 하나인 ‘첩약 급여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키트루다와 타그리소처럼 과학적으로 효능이 입증됐는데도 가격 문제로 건강보험 급여 심사에서 탈락한 최신 항암제들을 효능이 확실하지 않은 첩약보다 먼저 급여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8월 28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방첩약 철회하고 해당 예산으로 중증질환자(암)의 치료제를 급여화 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에는 2일 오후 6시 30분 기준 3468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많은 중증 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제를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죽어간다”면서 ▲키트루다 ▲타그리소 ▲옵디보 ▲티쎈트릭 등 비급여 항암제를 소개했다.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로리주맙)는 한국MSD가 출시한 면역항암제의 일종으로 비소세포폐암 등 다양한 암에 적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체 면역체계는 암세포를 인식해 제거할 수 있는데, 이때 암세포는 PD-1 단백질을 이용해 면역체계를 회피할 수 있다.

키트루다는 PD-1에 작용해 해당 기작을 무력화하면서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인식·사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원리를 발견한 혼조 다스쿠 교토대 교수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타그리소(오시머티닙)는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표적항암제로, 기존 폐암 치료제인 이레사·지오트립 대비 뇌 흡수율이 뛰어나 암세포의 뇌 전이를 막는 데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뇌로 전이된 암의 치료뿐만 아니라 암세포의 뇌 전이 자체를 예방하는데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약가’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한계점이 있어 다수의 환자가 비급여로 약을 처방받는 현실이다.

키트루다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항암제를 사용한 뒤 치료에 실패해야만 건보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PD-L1(면역항암제 반응성 예측 지표의 일종) 발현 정도 또한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해야만 한다. 비급여 투여 시 3주당 1회 투여 당 약 560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치료비인 것.

타그리소 또한 이레사·지오트립 등 기존 치료제를 먼저 투여한 뒤, 환자에게서 내성과 변이가 나타나야만 건보 급여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상황이 급할 경우 타그리소를 비급여로 우선 투여할 수는 있지만, 1개월에 약 700만 원의 거금이 드는 실정이다. 일부 환자들은 급여 기준을 충족하고자 기존 항암제로 연명하다가 타그리소를 투여하기도 전에 사망하기도 한다.

옵디보(니볼루맙)와 티쎈트릭(아테졸리주맙)도 여러 암에 쓸 수 있지만, 현재 흑색종 등 일부 암에만 제한적으로 건보 적용이 가능하다. 또 독성이 강한 기존 항암제를 사용한 뒤에만 건보 적용이 가능하다는 한계점과 1개월 약값이 수백만 원이 소요된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기회는 충분했다. 그동안 MSD·아스트라제네카를 비롯해 신형 항암제를 보유한 회사들은 건보 확대 적용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키트루다와 타그리소는 번번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5월 열린 암질환심의위에서 키트루다는 비소세포폐암 1차 요법 등에 대해 ‘보류’ 판정을, 타그리소는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1차 요법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후 키트루다는 8월 재차 열린 암질환심의위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의료계는 첩약급여화보다도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파업 중인 전공의는 “표면상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건보 확대에 난항을 겪는 핵심적인 이유는 약가다. 너무 비싸 건보 재정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실상은 제약사들이 약가를 낮춘다고 해도 정부에서 확대를 해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키트루다와 타그리소를 비롯한 신종 항암제들이 과학적으로 또 임상적으로 그 효과가 밝혀졌는데도,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 있다”며 “예산이 부족하다면서 15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첩약 급여화는 왜 강행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과학적으로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첩약 대신 신종 항암제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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