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국회 홈페이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파업 중인 의사들에게 칼을 빼 들었다. 재난에 필요한 자원에 ‘인력’을 포함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 법이 시행되면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는 의료계 인력을 공식적으로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의사 사회는 전반적으로 격한 거부감을 드러낸 가운데, 약사 사회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의견과 강제 동원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나뉘는 형국이다.

24일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 13명 의원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4조 1항인 “재난관리 책임기관의 장은 재난의 수습활동에 필요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비, 물자, 자재 및 시설을 비축·관리해야 한다”에 ‘인력’을 추가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비축·관리’ 부분도 ‘비축·지정 및 관리’로 변경된다.

황 의원은 개정안 취지에 대해 “현행법상 재난관리 책임기관이 비축·관리할 수 있는 자원이 물적 자원으로 한정돼 있어, 구제역이나 메르스, 코로나19 등 상황에서 의료인력 등 인적 자원이 절실히 필요해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며 “재난 관리자원에 인력을 포함해 재난 시 효율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번 개정안이 자칫 의료계에 대한 압박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와 의료계는 공공의대·의대 정원확대·첩약 급여화 등 의료정책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이 문제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6일부터 파업 중이다. 대전협은 이미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고, 의협도 파업 기한을 28일에서 무기한으로 늘릴 것을 고려 중인 상황이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부는 재난 상황에서 물적 자원뿐만 아니라 인력도 임의로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코로나19 상황이 지속한다면, 정부는 해당 법이 통과·시행한 이후 의·약사 등 의료진을 재난관리 인력으로 분류해 동원을 강제할 수 있는 것.

개정안은 세부 내용에 따라 통과 후 6개월 뒤 시행된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정부가 개정안 시행 이후 ‘강제 동원’ 카드로 의료계를 본격적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범여권이 현재 180석으로 과반수를 확보한 만큼,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한다면 통과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의료계의 의견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제각각으로 나뉘는 형국이다.

먼저 의사들은 ‘노예 취급’이라면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파업 중인 전문의는 “공공의대·의대 정원확대·첩약 급여화 등 추진 중인 의료정책들을 관철하기 위해 여당을 통해 의료계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회의 과반수를 여당이 차지한 상황에서 여당이 발의한 법안은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를 통해 의료계를 압박하는 행위는 매우 치졸한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공의는 “현재 교수들마저 파업에 동참할 의사를 보이자 정부가 행동에 나선 것”이라며 “진정 원만한 해결을 원한다면 압박 대신 열린 자세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다만 의협과 대한병원협회는 모두 “이번 법안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은 내부적으로 조율 중”이라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약사 사회의 목소리는 절반으로 나뉘었다. 대한약사회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일선 약사 사이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나왔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의사나 약사 같은 면허는 정부가 의료인의 전문성을 인정해 부여하는 배타적 권한”이라며 “정부가 전문성을 인정해 의료행위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한 만큼, 위기 상황에서 정부에 협력해야 한다는 이번 법안의 취지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인권 침해로 번지지 않도록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약사는 “해당 법안이 실효성이 생기면 의사뿐만 아니라 약사들도 강제 동원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공적 마스크 사태 당시 약사 사회가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힘썼음에도 정부는 결국 마스크 면세 조치조차 해 주지 않았다. 의료계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정부의 이번 정책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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