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식약처가 향정 다이어트약에 ‘분기별 원료배정제’ 도입을 시사한 가운데 관련 규제가 ‘위법 논란’에 휘말렸다. 법조계에서는 원료배정제의 법적 근거가 전무한 수준이기 때문에 해당 규제가 제약사들의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한 행정처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들리고 있다.

심지어 식약처가 기본적인 법률 검토 없이 성급하게 정책을 추진 중이라는 비판마저 들리고 있다. 약사 사회에서도 이번 규제가 제약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지만 정작 식약처 마약정책과는 묵묵부답이다. 식약처의 ‘불통행정’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분기별 원료마약 배정제’는 식약처가 UN 단일협약에 따라 국내 마약 수급의 적정한 관리를 위해 시행 중인 제도다. 마약류제조업자가 식약처 요청에 따라 분기별 원료마약 사용계획을 제출하면 식약처는 업체별로 원료마약을 배정한다. 배정 결과를 통보받은 이후 마약류제조업자는 배정조건을 준수해 원료마약을 구입한다.

지난 24일 업계가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식약처가 오남용 방지를 위해 향후 ‘분기별 원료배정제’를 향정 다이어트약에 적용한다는 것.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지난 21일 업계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해당 내용을 공지했다.

문제는 ‘분기별 원료배정제’가 향정 다이어트약에 적용될 경우 법적 근거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분기별 원료배정제’의 법적 근거는 마약통제 관련 국제조약 '1961년 마약에 관한 단일협약'이다. 식약처가 지난해 5월 발간한 ‘마약류 취급업무 안내서(제약사용)’에 의하면, 식약처는 협약 20조와 제21조에 따라, 마약 관련 통계 조사를 위해 제약사에게 원료마약 등에 대한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마약류에 국한된다. 법조계에서 ‘위법논란’이 일고 있는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마약 제조를 위한 원료 물질을 국제 협약에 따라 통제하는 것은 가능하다.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협약을 살펴보면 펜터민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의 원료는 협약에 없다. 마약이 아닌 향정신성 의약품이기 때문에 협약에서 통제하는 마약에 해당하지 않는 물질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구나, 원료마약 소요량 자체를 통제하는 것은 제약사들의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과도한 처분이다. 이런 의무를 부과하려면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에도 생산량 통제에 관한 내용은 없다. 식약처가 해당 조치를 강행하면 이는 위법한 처분이다. 제약사들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1961년 마약에 관한 단일협약’ 1조는 약품(DRUG)에 대해 “별표1과 2에 해당하는 물질”이라고 정의한다. 별표1은 아세틸메타돌 등 약 약 60개의 물질이 있고 별표2 목록의 물질은 아세틸디히드로코데인 등 약 20개다. 하지만 펜터민과 펜드메트라진과 같은 향정 다이어트약은 목록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향정 다이어트약은 비만치료제 시장의 주요 품목이다. 대표적인 성분은 펜터민으로 대웅제약(디에타민) 휴온스 (휴터민) 등이다. 알보젠 코리아의 큐시미아(펜터민염산염+토미라메이트)도 펜터민 성분 기반 복합제다. 펜드메트라진 제품은 알보젠코리아의 푸링이다.

‘분기별 원료 배정제’가 도입될 경우, 이들 제약사들은 전년도에 제출한 연간 원료마약 예상소요량을 기준으로 매 분기 시작 20일 전, 다음 분기별 원료마약 요구량에 대한 사용계획, 재고량 등을 식약처에 제출해야 한다. 수차례 자료 제출은 물론, 원료 배정을 통한 생산량 통제라는 ‘허들’도 생긴다.

법조계에서 식약처가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고, 분기별 원료 배정을 통해 향정 다이어트약의 생산량을 조절할 경우 제약사들의 ‘줄소송’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견이 들리고 있는 배경이다.

앞서의 변호사는 “식약처가 기본적인 법률자문조차 거치지 않은 것 같아 황당하다”며 “만약 원료 배정제를 강행할 경우 제약사들은 행정처분에 대한 취소소송 제기해 위법성을 다툴 수 있다. 국회에서 법을 정하지 않는 한, 위법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법률에 근거가 없으면 고시를 만들더라도 위법이다”고 강조했다.

약사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약사는 “향정 다이어트약 오남용 문제는 의원급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며 “차라리, 의원급 의료기관의 처방량을 제한하고 보고의무를 깐깐히 할 수 있다.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에서 예외적 처방이 늘어난 의원에 대한 법적 제제도 방법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약 관련 약들은 대부분 진통제다”며 “통증을 완화하고 싶은 기본적 욕구를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다. 중독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향정신성 의약품은 마약과 성격이 다르다. 단순히 생산량을 통제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을뿐더러 제약사들의 생산동력을 떨어뜨리는 과중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식약처는 소극적인 입장으로 일관 중이다. 식약처 마약정책과 관계자는 “원료마약 자료를 보고받고 배정하는 것은 국제 협약과 국내법이 동일한 효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만 향정 다이어트약 적용에 대해서는 드릴 말이 없다”고 즉답을 피했다.

팜뉴스 측은 식약처 마약정책과와 대변인실 측에 27일부터 수차례 ‘마약 원료 배정제의 향정 적용 위법 논란’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약업계에서 식약처 마약정책과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고 있는 배경이다. 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들과 간담회까지 진행했다면 상당히 구체적으로 논의가 오갔을 것”이라며 “향정 다이어트약에 원료배정제를 적용하겠다는 행정조치에 대해,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식약처가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일반 환자나 시민을 괄시하는 태도다” 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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