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홀딩스)가 최근 캐나다에 있는 혈액제제 생산공장과 미국 혈액원 사업부문을 세계 최대 혈액제제 회사인 그리폴스에 매각했다. ‘초대형 규모의 빅딜’이 이뤄진 가운데 업계에선 녹십자홀딩스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북미진출 사업을 사실상 접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이에 대해 녹십자 측은 이번 매각건과 상관없이 북미진출 사업은 기존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원료의약품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 시장을 목표로 추진한 정맥주사용 면역글로불린 제제가 FDA 품목 허가에 난관에 부딪친 점이 이번 빅딜의 촉매가 됐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슬기로운 매각’

지난 20일 GC와 그리폴스의 매각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 대다수 언론이 인용한 키워드다. 실제로 GC는 혈액제제 북미 생산법인인 GCBT(캐나다 혈액분획제제 공장)와 미국 혈액원 GCAM의 지분 100%를 4억6000만달러(한화 약 5520억원)에 그리폴스에 넘겼다.

증권가에서도 GC가 재무건전성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 거래로 GC녹십자로 유입되는 현금은 1억1200만 달러로 손익 영향은 녹십자 별도 기준 순이익 430억원, 연결기준 순이익은 700억원 수준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원료의약품 업계는 이번 매각의 ‘숨은 속사정’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원료의약품 업계 관계자는 “GC는 애당초 정맥주사용 면역글로불린 제제의 미국 수출을 대비해 캐나다 현지 공장을 세운 것”이라며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IVIG-SN)의 미국 FDA 허가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에 매각결정을 내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상 북미 진출 사업을 철수하려는 포석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공장과 함께 혈액원을 매각한 점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라며 “생각보다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IVIG-SN)의 허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지금껏 투자한 게 있어서 완전 철수는 쉽지 않아 마지못해서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그리폴스가 적당한 제안을 하니 넘겨버린 셈”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GC 측은 그동안 ‘캐나다 현지 공장’과 ‘미국 혈액원’을 북미 진출을 겨냥한 핵심사업으로 평가해왔다. 5월 15일 공시된 반기보고서(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GC는 ‘혈액제제의 대형 수출품목 육성’과 ‘신규시장 개척’은 핵심 사업으로 소개했다.

당시 GC는 “아이비 글로불린 에스엔의 북미 허가를 위해, 국내 혈액제제시설 Capa 증설 및  혈액분획제제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 진출을 위해 캐나다 퀘백 주 몬트리올에 혈액분획제제 공장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생산된 의약품을 현지 구매기관에 공급하기로 캐나다 정부와 계약 체결했다”며 “공장을 교두보로 향후 아이비글로불린 등 혈액제제 공급을 확대해 글로벌 시장공략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원료혈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미국 내 자체 혈액원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7년 10월 GC는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 혈액제제 생산법인(GCBT)을 설립했다. 연간 생산능력 100만ℓ 규모다. 2020년 공장 가동이 목표였지만 현지 바이오 생산공정 전문인력 부족으로 상업용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의 원료의약품 업계 관계자는 “수천 억 들여 공장을 지은 것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캐나다 정부의 품목허가를 받으려면 GMP 등 계속 돈이 들어간다. 공장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당장 접는다고 하면 출혈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일단 적당한 가격에 팔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GC 측은 이번 매각 결정과 ‘북미 사업 철수’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GC 관계자는 “북미시장의 사업 철수는 전혀 아니다”며 “혈액제제의 최대시장은 미국이다. 미국시장 진출에 대비해 오창공장을 증설했다. 캐나다 현지 인력의 숙련도가 많이 올라와있지 않고 코로나19 이슈로 하늘길이 막혀 캐나다 공장의 상용화가 지연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위한 딜이지 사업 철수는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시장 진출의 핵심은 오창공장이다”며 “향후, IVIG-SN 10%에 대한 FDA 실사도 2배 증설을 완료한 GC녹십자 국내 혈액제제 생산시설인 충북 청주시 오창공장에서 받을 것이다. 애초에 미국 시장은 오창공장을 기반으로 추진됐기 때문에 혈액제제에 대한 사업축소나 철수는 아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16년 11월과 2018년 9월 GC 측은 IVIG-SN 5% 제조공정 자료를 보완하라는 이유로 FDA허가가 지연됐다. 오창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올 4분기쯤 IVIG-SN 10%에 대한 미국 허가를 다시 신청할 예정이기 때문에 캐나다 공장 매각과 미국 시장 진출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게 GC의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는 혈액원 매각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연내 두곳의 혈액원을 세운다고 발표한지 수개월 만에 미국 혈액원을 팔았다”며 “혈액원은 안정적인 혈장 공급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혈액원을 팔고 캐나다 공장을 매각하면 장기적으로 오창공장 혈장 공급에도 문제가 생긴다”며 “아무리 미국에서 혈액을 수입해 국내 오창공장에서 혈액분획제제를 생산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GC는 2009년부터 혈액원을 꾸준히 늘려왔다. 회사는 불과 6개월 전인 1월경, 미국에 12번째 신규 혈액원 개원 소식을 알렸다. 혈장 안의 필요한 성분만을 고순도로 분리한 의약품인 혈액제제에서 안정적인 원료혈장 공급처 확보는 생산공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조건이다.

당시 박성익 GCAM 대표는 "안정적인 혈장 확보는 북미 혈액제제 시장 진출에 기반이 되는 만큼 추가적인 혈액원 개원을 준비하고 있다"며 "연내 두 곳의 혈액원을 추가 설립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두 곳의 혈액원 추가 설립은 최근 ‘매각’으로 귀결됐다.

실제로 헌혈자의 혈액은 각 지역에 있는 혈액원으로 이동된다. 혈장분획공장은 혈액원으로부터 혈장을 공급받아 혈장분획제제를 생산하고 공급한다. 혈장분획제제란 혈액제제의 하나로 혈장 속에 함유돼 있는 100여가지 단백질 중 필요한 성분만을 골라 물리․화학적 방법을 통하여 고순도로 분리 정제한 의약품이다. 

대표적인 분획제제가 알부민과 면역글로불린, 응고인자다. 미국 혈액원 매각이 곧 오창공장의 면역글로불린 제제에 대한 안정적인 혈장 공급의 ‘허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까닭이다.

이에 대해 GC 측은 혈장공급의 안정적인 확보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매각을 했을 때 GCAM을 통해 2년 의무공급기간을 확보했다. 다만, 2년 이후 어떻게 미국에서 혈액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중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현지 혈액원은 말 그대로 채혈을 하는 개념이다”며 “혈액원 말고도 매혈이 가능한 국가이기 때문에 GCAM을 통해 돈을 주고 혈액을 사왔듯이 앞으로도 혈액을 사올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미국 시장 진출은 이번 주식 양도 인수 계약과 별개의 건이며 면역글로불린 제제의 FDA 품목허가 추진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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