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 교수(아주대학교 약학대학)

사진=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김홍표교수
사진=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김홍표교수

“사실 병원체 입장에서는 인간은 번식하기 아주 좋은 숙주죠. 개체 수와 생물량도 많고 안정적입니다. 인간 몸속에서 안정적으로 생존·번식할 수 있도록 진화하는 것이 이들에겐 생존의 열쇠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에볼라바이러스는 실패한 사례입니다. 숙주에게 치명적이잖아요. 하지만 코로나19는 짧은 시간 안에 인간을 안정적인 숙주로 삼는 데 성공했습니다. 생존 면에서 볼 때 성공적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진중한 말투, 여러 저서와 대중 강연으로 많은 청중을 만나온 과학계 ‘셀럽’의 이미지와는 다소 달랐다.

하지만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가자, 그의 저서와 강연이 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 대본이 없이도, 그는 대화에 나오는 여러 주제에 맞춰 역사, 배경부터 전망까지 막힘없이 술술 풀어냈다. 화려한 언변이나 화술은 없이 지식의 깊이만으로도 청중을 압도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김홍표 아주대 약대 교수를 팜뉴스가 만났다.

김 교수는 먼저 최근 대유행 중인 코로나19를 시작으로 과학 ‘썰’을 풀어나갔다. 그는 “앞으로 코로나19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화 그리고 돌연변이가 될 것”으로 예고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가 인수공통 바이러스란 것은 밝혀졌지만, 아직도 어느 동물로부터 유래해 인간화됐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며 “인수간 그리고 사람 간 감염 중 누적되는 돌연변이도 문제가 될 것이다. 인간의 연구 속도로는 돌연변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앞으로 인류와 공생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김 교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류를 숙주로 삼아 안정적인 생존을 택했듯,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진화적으로 독성을 줄이고 인간과의 공생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러나 그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사례와 현재를 아우르는 상세하면서도 명쾌한 해설이었다.

김 교수는 이처럼 코로나19 외에도 생물학 및 의학 관련 이슈를 명쾌하고 상세하게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과학 대중화의 선두 주자 중 1명이다.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가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될 때는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으로 크리스퍼와 유전자 가위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프로바이오틱스와 장내 미생물이 주목받을 때는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을 통해 독자에게 소화기관과 장내 환경에 대한 이해를 선사하는 등 소위 요즘 ‘핫’한 과학에 대한 ‘팩트’를 제대로 전달하는 데 힘 써왔다.

김 교수가 처음부터 과학 대중화의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 또한 처음에는 평범한 약대생, 평범한 연구원으로 시작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약사 출신으로 일동제약, 일라이 릴리 등 제약회사의 개발 담당 연구원 등으로 재직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 회사원 대신 연구의 길을 택했다. 김 교수는 “시간을 조절해 일하는 것보다는 지금 주어진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을 선호하던 내겐 회사원은 잘 맞지 않았다”며 “회사 특유의 수직적 의사결정 체계도 적성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국립보건원 박사후연구원과 인하대 의대 연구교수,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하버드대 의대 연구원을 거치면서 특급 연구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주로 천연물 화학, 헴 생물학, 바이오 활성가스, 생물학, 자기소화, 면역학 등에 관한 논문을 썼는데, 한국연구재단이 톰슨로이터 데이터베이스 피인용 상위 10% 논문을 대상으로 분석한 ‘2009~2014년 한국인 기초과학 상위 연구자 목록’에 의학(4위), 약학(3위) 분야에 이름을 올리면서 학계에서 맹활약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도전을 택했다. 연구자에서 과학 전도사로 한 번 더 변신한 것. 김 교수의 도전을 이끈 원동력은 두 권의 책이었다.

김 교수는 “칼 짐머의 ‘기생충 제국’과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라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전공을 바꿀까 생각할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며 “한 주제를 놓고 역사와 기원부터 낱낱이 파헤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과학 도서들에 흥미를 느꼈다. 이후 헤모글로빈에 관해 정리하는 ‘헴 생물학’ 번역에 참여하면서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2013년 산소와 헤모글로빈, 적혈구에 대해 정리한 ‘산소와 그 경쟁자들’을 시작으로 ‘먹고 사는 것의 생물학’,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 ‘가장 먼저 증명한 것들의 과학’ 등 다양한 과학 교양서를 저술했다.

그는 또 다양한 해외 과학서적을 번역해 국내에 선보이기도 했다. 소화계 속 신경계를 다룬 ‘제2의 뇌’부터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지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 의학의 눈으로진화를 조명한 ‘진화와 의학’, 콩팥을 통해 진화를 바라본 ‘내 안의 바다, 콩팥’, 식품 괴담에 대한 진실을 다룬 ‘코로나 시대, 식품 미신과 과학의 투쟁’ 등 다양한 책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외에도 2017년부터 경향신문에 ‘과학의 한귀퉁이’라는 칼럼을 게재하는 등 다양한 저술활동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과학의 재미와 중요성을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이토록 과학 대중화에 열정적으로 매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과학교육에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과학을 공부할 때 특정 이론이나 현상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 기원과 역사를 함께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우리나라 과학교육은 이를 건너뛰고 시험에 나오는 내용 위주의 암기식 교육에 치중해 있다”며 “연구의 배경과 역사에 중점을 두고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심으로 잡고 글을 쓰고 있다. 교과서와 문제집이 아닌 살아있는 과학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광합성을 예로 들면서 다시 한번 과학교육의 문제를 되짚었다.

그는 “가령 광합성에 관해 설명한다고 하면, 최초의 생명체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초의 생명체는 지구의 에너지를 통해 탄생했지만, 태양의 빛에너지를 화학적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남세균이 처음 등장하면서, 생명체는 활동 범위를 크게 넓힐 수 있었다”며 “광합성의 등장은 진화적으로 볼 때 일대 사건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광합성을 배울 때 학생들은 명반응, 암반응만 배운다. 이런 점이 문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광합성의 명반응도 자세히 살펴보면 세포 호흡의 TCA 회로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그것이 왜 같은지 질문을 던지고, 또 이에 대해 답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 문제를 다양한 대중 강연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일반적으로 정형화된 강연보다는 청중에게 질문을 던지고, 기원과 역사 등 배경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지식을 억지로 주입하는 과외선생이나 유행만 좆아 요점만 대충 훑는 그저 그런 강연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는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글을 통해 사람들과 더 활발하게 소통할 전망이다.

김 교수는 “올해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강연 활동이 어려운 만큼, 독자들과 글로서 만나는 일이 많을 것 같다”며 “그동안 경향신문에 냈던 칼럼을 엮은 모음집을 비롯해 당장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현재 집필·번역 중인 여러 책이 올해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업인 연구 활동을 다시 진행할 계획”이라며 “인류는 식물들이 포식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던 물질을 약으로써 사용해왔다. 이번 부분을 진화생물학적으로 접근해 빅데이터를 이용한 바이오인포메틱스를 통해 기원을 파헤치는 연구를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과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간의 본능인 ‘알아가는 재미’를 선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교수는 “인간은 누구나 궁금한 점,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며 “모르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원초적인 기쁨, 주입하는 지식이 아닌 끝없는 질문을 통해 하나하나 깨우쳐가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선사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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