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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영성] 폴 칼라니티의 이야기
[헬스케어영성] 폴 칼라니티의 이야기
  • 신용섭 기자
  • 승인 2020.07.15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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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양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건강과 영성 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0년 한 해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로 인해 여러 어려움들을 겪으며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고생한 분들은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며 헌신해온 의료진과 보건의료 실무자들일 것이다. 대한민국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노고와 헌신에 경의를 보낸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한 젊은 의료인의 영적 체험에 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 1977-2015)는 그의 자서전적 저서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흐름출판, 2016)를 통해, 위기와 시련 속에서 사랑과 희망의 영적 체험이 이루어진 드라마틱한 사례를 우리에게 제시하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Stanford) 대학교 병원의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는 순간 폐암 선고를 받고, 36세 유망한 의사로서의 모든 미래를 접고 투병하다가, 결국 아내 루시(Lucy)와 어린 딸 케이디(Cady)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발병 이전까지 직업적 전문의사로서 성공과 명예를 추구하던 그는, 이제 병고 속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와 목적을 찾기 위한 투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가 예전에 돌보던 환자들의 입장으로 돌아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에 임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169쪽)


그리하여 예전에는 의사였지만 이제는 죽음을 앞둔 환자로서, 그가 투병 끝에 마침내 깨닫게 된 의사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히포크라테스나 마이모니데스, 오슬러도 가르쳐주지 않은 뭔가를 배웠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 나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198쪽)


이처럼 폴 칼라니티가 찾고자 했던 ‘새로운 정체성’이란 곧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으로서(환자로서) 정체성,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동반하며 돕는 인간으로서(의사로서)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폴 칼라니티의 이러한 체험은 그의 아내 루시의 ‘온전함(새로운 정체성)을 향한 여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루시 칼라니티는 숨결이 바람 될 때 후기(epilogue)를 통해, 위기에 마주했던 그들의 결혼 생활이 오히려 암 투병 과정을 통해서 회복되고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음을 증언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연민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지를 강조한다.


“이 책이 출판되고 나면 가족과 친구들은 폴의 레지던트 기간이 끝나갈 즈음 우리 결혼 생활에 위기가 닥쳤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그것은 우리의 진실이고, 우리가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 계기이며, 폴과 나 우리 둘 인생의 고난과 구원, 의미를 보여주는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암 진단이라는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예전의 부드럽고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폴의 육체적인 생존과 우리의 감정적인 생존을 위해 우리는 서로를 꼭 붙잡았고, 그러면서 우리의 깊은 사랑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253-254쪽)


그러므로 폴 칼라니티의 경우는 의학적 치료에는 실패하였지만,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치유의 차원에서는 성공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폴의 아내 루시는 남편과 함께했던 여러 해의 투병 과정이 오히려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음을 다음과 같이 역설적으로 묘사한다.


“비록 지난 몇 년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때로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충만한 시기이기도 했다.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의 균형을 힘겹게 맞추며, 감사와 사랑의 새로운 깊이를 탐구한 시기였다.”(256-257쪽)


사실, 폴 칼리니티는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적 배경에서 자라났지만, 의학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세계관에 몰입하게 되었고, 영적 차원에는 무관심하게 되었다. 이제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투병 과정 속에서 다시 영적 체험에로 귀환하게 되었음을 스스로 밝힌다.


“인류의 지식은 한 사람 안에 담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생성되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리는 이 모든 지식 위 어딘가에 있다.”(205쪽)


이처럼 폴 칼라니티의 사례는, 병고를 통해 죽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깊은 영적 체험을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전해준다. 병고의 시련과 죽음의 위협마저도 그의 사랑과 희망에 관한 영적 체험을 꺾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올 한해 COVID-19로 인해 겪어야만 하는 모든 어려움들, 그 시련과 위기 속에서도, 부디 많은 분들에게 정말 좋은 영적 체험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기원한다. 직접 병고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분들, 예방과 검사와 치료를 위해 헌신해온 보건의료 실무자들, 그리고 일상의 여러 어려움들을 겪어야만 했던 모든 분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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