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제현)

사진=구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제현)
사진=구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제현)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인터뷰가 중반에 다다를 무렵, 팜뉴스 취재진은 ‘메디톡스’란 키워드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5월 메디톡신 제조 및 품질 자료 조작 사건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되었다. 당시 공익신고를 통해 메디톡스사를 둘러싼 의혹을 처음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 구영신 변호사다.

“처음 제보내용을 접하고 나서 그 심각성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마침 생명윤리정책분야 박사과정을 밝으면서 제약산업 관련 공부를 하고 있었고, 의료기관에서 IRB위원 활동 등을 하면서 사건의 골격과 구조를 파악하는 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제약사가 정말 이럴 수 있나

구영신 변호사는 자료를 검토한 결과 ‘정말 제약사에서 이럴 수가 있나. 엄청난 일을 잠시도 아니고 십여 년간 지속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디톡스 사건은 내부적으로 한 두 사람의 일탈이 아니었다. 조직적으로 범행이 반복된 점을 파악하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문제를 제기해서 이런 행위를 중단시켜야 했다.”

문제 제기는 비실명 대리신고로 하기로 했다. 2018년 도입된 '비실명 대리 공익신고 제도'는 공익신고자가 자신의 인적사항을 밝히지 않고 변호사를 통해 권익위에 신고가 가능한 제도다. 구영신 변호사는 제보내용이 타당하고 신빙성이 있음에도 일종의 내부 제보에 따른 두려움이 있을 것이 우려됐다. 비실명 대리신고 제도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까닭이다.

비실명 공익신고 제도도 택한 혜안 발휘

“처음에는 식약처가 힘있게 조사해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식약처 대처는 소극적이었다. 결국, 검찰에 사건이 이첩됐다. 검찰은 한정된 인력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검찰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청주지검은 권익위의 신고 내용의 상당 부분을 인정하고 약사법 위반과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메디톡스사의 대표이사와 공장장을 기소했다. 식약처도 메디톡신주 3개 제품(50단위, 100단위, 150단위)의 품목허가를 취소했다.

원액 바꿔치기와 성적서 조작이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됐다는 이유에서다. 구영신 변호사가 쏘아올린 화두가 결국 메디톡스 대표이사 등의 기소와 품목허가 취소로 귀결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주로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메디톡신주 200단위가 허가 취소 품목 중에서 빠진 부분이다. 식약처가 명시한 시기(2012~2015년)에는 거의 생산이 되지 않았던 제품이다. 하지만 허가 당시부터 원액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같은 원액과 제조공정을 거치는 200단위가 문제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메디톡스는 줄곧 '2012년 12월부터 2015년 6월까지' 한정된 기간에 생산된 '메디톡신주'에 관련한 위법행위만 있었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처분 근거조항은 ‘공중위생상 위해 초래’가 명시된 약사법 제71조였다. 해당 기간 생산분은 오래전 소진됐기 때문에 그 이후에 생산된 제품에 대해서는 공중위생상 위해도 없다는 것이 메디톡스의 주장이다.  

반면 구영신 변호사는 메디톡신 사건의 허가 당시의 전후 사정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메디톡신이 2006년에도 허가를 받기 위해 자료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제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기시법(의약품 규격과 품질에 대한 기준 및 시험방법 자료)도 다른 회사의 것이 도용됐다. 2006년 허가 당시 안전성 자료 역시 조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앞으로 이 대목도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자료를 전부 제출했고 조사도 어느 정도 완료된 부분이다. 추가적인 진행만 있으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메디톡신주 제조기술의 실체가 없어”

구영신 변호사는 메디톡신 사태의 핵심 문제는 “메디톡스에 메디톡신주에 대한 제조기술의 실체가 없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기시법을 포함한 약의 제조 과정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시법을 도용하고 허가 자료를 허위로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메디톡신주의 품질을 일관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담보할 만한 기술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

“허가 기준에 맞는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제조기술이 담보되지 않으니, 허가 이후 원액을 만들어도 역가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역가가 들쑥날쑥하니, 다른 것을 써보기도 하고 기존 제품에 불량품이 나오면 수출용으로 쓰기도 했다. 원액을 바꿨는데도 역가가 들쑥날쑥하니 역가를 조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검찰이 기소하고 식약처가 품목허가 취소처분을 내린 범위는 ‘2012년~2015년’에 생산된 메디톡신주 제품에 국한됐다. 하지만 메디톡스가 처음 허가 당시부터 메디톡신주에 대한 제조기술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 외의 기간에 생산된 제품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구영신 변호사의 주장이다. 검찰이 공소시효 때문에 2012년 이전에 생산된 제품에 대해서는 기소를 못했다는 것.

“2017년도 생산제품에 대해서도 식약처는 회수 폐기 명령 처분이 내려진 바 있다. 당시도 메디톡스는 안정성 자료를 조작했다. 과연 2012-2015년도에만 위법행위를 하고 이후에는 원인을 파악하여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메디톡스 측은 허가 취소처분 이후 즉각 반격을 시작했다. 대전지방법원에 품목허가 취소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전지방법원은 9일 품목허가 취소 처분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품목허가 취소가 단기간에 번복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법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구영신 변호사

“생명윤리정책 박사과정을 통해 관련 법제를 연구하고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생명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의료서비스, 새로운 의약품 등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형태의 의약품이 등장할 때마다 법도 새로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생명이다. 인생 후반부는 기존의 의료 분쟁을 넘어서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의료윤리와 생명윤리에 매진할 계획이다.”

어쩌면 서울대 보건정책대학원 시절, 법서를 처음 꺼내든 순간부터 딱딱하고 건조한 법에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율사의 길이 운명적으로 예정돼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법조계에서는 내부고발이 검찰 수사로 이어지고 식약처 처분을 통해 품목허가 취소가 이뤄진 점을 ‘전무후무한 사례’로 평가한다. 향후 사건의 결론을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제보자들의 용기와 그 용기를 지켜주기 위해 ‘공익대리’ 제도를 택한 구영신 변호사의 지혜와 노력이 없었다면 메디톡신주 관련 의혹들이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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