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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말보다 믿을 만한 댓글? 펜벤다졸로 바라본 의료계 불신
전문의 말보다 믿을 만한 댓글? 펜벤다졸로 바라본 의료계 불신
  • 신용수 기자
  • 승인 2020.07.0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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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000여 개 분석, 경험에 대한 맹신 및 의료체계 향한 반감 팽배
의료계 “말기 암환자 심정 이해하지만, 의료계 향한 의심 거둬야”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국내 연구팀이 개구충제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 가능성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을 분석한 결과, 전문가 집단을 향한 대중의 불신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 경험담을 맹신하거나 맹목적인 희망을 갈구하는 등, 대중들의 마음이 정량화된 연구 결과나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감성적 호소에 더 쏠린다는 뜻이다. 의료계는 말기 암 환자들을 부작용 등 과학적 근거로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경험 의존적인 대중의 경향성은 우려스럽다는 입장이다.

도영경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전공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암 환자의 펜벤다졸 복용에 관한 기사에 달린 댓글 2100여 개를 분석한 결과, 개구충제 복용을 찬성하는 댓글이 절대다수를 차지했고 그 이면에는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과 개인적 경험에 대한 공감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에 관한 논문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하는 학술지인 ‘보건사회연구’ 2020년 6월 40권 2호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지난해 10~11월 작성된 펜벤다졸 관련 기사 중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2건의 기사에 달린 댓글을 분석했다. 이 기간은 암 환자의 펜벤다졸 복용에 가장 이목이 집중됐던 시기로,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개그맨 김철민 씨가 펜벤다졸 복용을 시작한 시기다. 두 기사는 모두 폐암 말기 환자를 취재·보도한 기사로, 각각 펜벤다졸 복용에 긍정적인 입장과 부정적인 입장이 담긴 상반된 내용의 기사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두 기사에는 각각 1296개, 850개씩 총 2146개의 댓글이 달렸다. 연구팀은 크롤링 기법을 이용해 해당 댓글들의 내용을 수집했다. 크롤링이란 파이선(Python) 등을 프로그래밍 툴을 통해 웹상에 존재하는 콘텐츠를 수집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후 상황 설명적 자료 분석 방법의 일종인 테마 분석을 통해 댓글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댓글 중 펜벤다졸 복용에 대해 찬성하는 댓글이 82.2%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다. 반면 반대의 경우 찬성의 10분의 1 수준인 8.4%에 그쳤다. 중립적인 댓글이 1.4%였고, 나머지 8%는 기타 의견이었다.

연구팀은 댓글들을 4개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댓글들은 성향에 따라 ▲펜벤다졸 괜찮다(45%) ▲의료체계에 대한 반감(21%) ▲전문가 집단의 역할 제시(15%) ▲펜벤다졸 안 된다(8%) 등 4개 카테고리로 나뉘었다.

이들 중 주목해야 할 카테고리는 ‘펜벤다졸 괜찮다’와 ‘의료체계에 대한 반감’이었다. 펜벤다졸 복용이 괜찮다고 한 의견들을 더 상세히 분류하면 ▲기적에 대한 열망(18%)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이해(17%) ▲치료효과에 대한 믿음(10%) 등이 차지했다. 이들은 대부분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희망에 의존한 댓글이었다.
의료체계에 대한 반감의 의견은 주로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16%)이 차지했다. 의료계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펜벤다졸의 약효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은폐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외에도 기존 항암치료의 한계를 지적하는 댓글들(5%)도 있었다. 전문가 집단 자체에 대한 불신을 담은 댓글은 ‘전문가 집단의 역할 제시’(15%)에 관한 댓글보다도 비율이 높았다.

더구나 전문가 집단의 역할 제시에 관한 댓글 중에서도 ‘복용을 막지는 말아야 한다’(7%)와 ‘치료 효과를 밝혀내야 한다(4%)’ 등 펜벤다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댓글이 다수를 차지했다. 근거 없는 약을 권고할 수는 없다는 의견은 2%에 그쳤다. 펜벤다졸은 안 된다는 의견까지 모두 합쳐도 10%에 불과하다. 전문가를 향한 대중의 깊은 불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연구팀은 추측과 경험에 의존한 뉴스 댓글이 펜벤다졸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분석했다. 도 교수는 “댓글 중 근거를 하나라도 제시한 경우는 7.5%에 불과했고, 그중에서도 2.3%는 호전 사례가 근거였다”며 “반면 과학적 근거(0.9%)나 전문가 의견에 기반을 둔 경우는 다른 이유들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중에게는 추상적인 통계나 수치 대신 경험이라는 근거가 더 강력한 믿음의 근거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반면 전문가들이 신뢰하는 ‘엄격하게 통제된 임상시험 결과’는 대중을 설득하지 못했다. 개구충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 사례 등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연구 결과에 대해 걱정 어린 목소리를 냈다. 과학적 근거만으로 내일이 없는 말기 암 환자들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전문가들을 향한 대중의 불신만큼은 되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약사는 “우리 약국에도 펜벤다졸을 구매하기 위해 왔던 환자들이 있었다”며 “일반적인 환자의 경우라면 절대 복용하지 말 것을 강권했겠지만, 이분들에겐 간 손상 등 부작용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돌려보내기는 했지만, 먹지 말라고 설득하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항암제로 많은 돈을 벌 것으로 생각하지만, 펜벤다졸 등 동물의약품이 항암제 등 전문의약품보다 마진율이 높다. 실제로 항암효과가 입증됐다면 의료계에서 숨길 이유가 없다”며 “전문가의 입장에서 복약 지도를 할 때는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일부 경험 등 낮은 수준의 증거로 환자들에게 불확실한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을 향한 불신의 눈초리는 거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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