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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 현장의 영적 요구
헬스케어 현장의 영적 요구
  • 신용섭 기자
  • 승인 2020.06.2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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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양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건강과 영성 3

인간의 언어는 대체로 두 가지의 큰 범주로 나누어 구분 가능하다. 하나는 ‘정보지시’ 언어이다. 이는 글자 그대로 정보를 지시하는 언어이다. 운전을 어떻게 하고 컴퓨터를 어떻게 사용하며, 또 어느 장소에 어떤 방법으로 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 다른 또 하나의 범주는 ‘의미통교’ 언어이다. 이는 정보가 아닌 의미를 전달하고 통교하는 언어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든지, “고맙습니다” 혹은 “용기를 내세요” 등의 표현이 여기에 해당한다. 고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 했던 말은 의미통교 언어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마음이 더 풍요로웠을텐데...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정보화 시대가 진행이 되면 될수록, 인간은 의미통교 언어를 상실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모든 것을 정보적(informative) 관점에서만 이해하려 들며, 정보의 수집 능력이 곧 힘이기에 인간 사회의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논리에 쉽사리 젖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또 타인의 정보를 탈취해 금전적 이득을 얻고자 하는 시도도 늘어난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흐름 속에서, 건전한 언어적 소통을 통해 인간에게 의미를 전달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는 정신적, 정서적, 영적인 차원의 기능은 점차 감소하게 된다. 컴퓨터 과학과 첨단 기술의 발전에 기초한 정보화 시대의 진행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안락함과 편리함 뒤에 숨겨진 그늘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온통 정보지시적 언어의 홍수뿐이다. 사회는 물론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마저 점차 의미통교 언어가 실종되어가면서, 인간의 정서는 메말라가고 현대의 많은 가정은 해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은 헬스케어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현대의 많은 보건의료 현장에서는 과거 역사에서 의학이 내포하고 있던 영적 요소들이 거의 실종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한계 체험을 하고 있는 환자에게는 많은 의료 정보들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많은 지시 사항들이 주어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환자는 자신이 복잡한 보건의료 체계의 미미한 요소일 뿐이며 그저 수동적으로 치료 행위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하나의 무력한 존재라고 느낄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환자를 하나의 전인적 인격체로 대하며 ‘치료’(cure)를 넘어서 ‘치유’(healing)을 지향하고자 하는 흐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영적 돌봄(spiritual care)을 통한 의미통교 언어의 전달이 필수적이다. 의미통교 언어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키는 실행 혹은 수행적(performative) 언어이기 때문이다. 정보 추구는 ‘치료’를 지향하지만, 의미 통교는 궁극적으로 ‘치유’를 지향한다. 미국 남플로리다대학교 의과대학 종양의학 교수인 로도비코 발두치(Lodovico Balducci)는 치료와 치유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항상 그렇게 되지는 않다. 때로는 치료는 되었으나 치유에 도달하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치료에는 실패했지만 치유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헬스케어 영성 제2권: 영적 돌봄의 개념, 219-225쪽).

영적 돌봄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서 제기된다. 이제는 보건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의 영적 요구(spiritual needs)가 매우 증가하고 있다. 환자들은 자신이 치료의 한 객체적 대상이거나 의료 정보의 단순한 수취인(受取人)임을 넘어서, 전인적인 인격체로서 돌봄 받을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영적 돌봄이란 환자에게 의료 정보와 치료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고 통교하는 행위이다. 환자가 자신은 의료 정보의 수취인이나 치료의 객체적 대상 이상의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는 돌봄이다. 즉, 환자가 정보지시 차원을 넘어 의미통교 차원에서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마주하고 대면(confrontation)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곧 영적 돌봄인 것이다.

영적 돌봄의 핵심은 특히 심각한 만성적 질병이나 회복이 어려운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놓인 사람들에게 그들이 지금 체험하는 한계 상황을 넘어서는 새로운 초월적 의미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돕는 데에 있다. 한마디로, 영적 돌봄이란 환자 자신의 영적 감수성(spiritual sensitivity)을 증대시키도록 도움으로써 그들의 영적인 의미 체험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돌봄이다. 그리하여 영적 돌봄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환자가 거룩한 실재와의 초월적 의미 통교 속에서 자신의 본래적 모습을 되찾아 온전함(wholeness)을 향한 전인적 통합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돌봄은 환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 실무자와 종사자들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하다. 오늘날 마치 전쟁과도 같은 현장에서 소진(burnout)의 위기에 직면해 심한 내적, 외적 갈등을 느끼는 보건의료 종사자들에게서도 이러한 영적 요구는 점점 높아져만 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질리언 화이트(Gillian Whit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영성을 보다 잘 이해하는 것이, 헬스케어 실무에 있어 진정한 탁월함을 제공하여 전인적이고도 효과적인 의료 서비스를 재정립하는 일의 열쇠라고 믿는다. 환자와 직원 모두가 보다 전인적인 방식으로 일하기를 희망한다. 영성과 영적 돌봄의 본질에 관한 논의가 이러한 희망을 실현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가 있다”(Talking About Spirituality in Healthcare Practice, p.40).

올 상반기 내내 COVID-19과 싸우며 장기전으로 인해 점차 지쳐가는 보건의료 실무자들과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영적 요구가 증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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