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재 치매전문센터장(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사진=권순재 치매전문센터장
사진=권순재 치매전문센터장

세계보건기구(WHO)는 20년 뒤 인류를 위협할 질병 중 하나로 ‘치매’를 꼽고 있다고 한다. 치매 질환의 발병률은 해가 갈수록 점차 높아져만 가는 추세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는 노령화 사회로 이미 접어든 시점에서 치매율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치매에 걸리면 사회생활이나 대인 관계는 물론 일상생활 전반에 문제가 생겨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또한, 가족이 그 치매환자를 보호해야하므로 많은 수고와 치료비 부담에 어려움이 처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시절 치매 문제를 개별 가정 차원이 아닌 국가 돌봄 차원으로 해결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었다. 이후 당선된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2일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주목적으로 한 추가경정예산에 치매 관련 예산 2000억 원을 반영해 ‘치매 국가책임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치매 국가 책임제가 실시 된지 3년이 흐른 시점이다. 치매에 대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도 환자도 노력하고 있다. 최근의 치매 치료 추세와 관리에 대해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권순재 치매전문센터장으로부터 의견을 들어 봤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통합적 치매 관리’가 트렌드인 것 같다. 통합적 치매 관리는 국내 치매 치료 및 관리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치매란 인지기능 저하로 인해 일상생활 수행에 지장이 생기는 상태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치매를 나이가 듦에 따라 발생하는 질환, 걸리면 어쩔 수 없는 질환이라고 여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다년간의 연구 결과에 의해 치매의 발생 원인과 종류가 다양하게 밝혀졌다. 아밀로이드 베타의 축적으로 인해 뇌의 신경 세포를 잃게 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부터 뇌졸중 또는 뇌혈관 병변으로 인해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 파킨슨병 치매 등이 그 예이다.

치매 원인과 종류가 다양한 만큼, 국내에서도 치매의 진단과 치료를 통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 과에서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수두증의 경우 신경외과까지 통합적으로 진단한다. 치매 치료에 있어서도 약물치료와 더불어 기저질환 치료, 가정에서의 재활 치료까지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치매는 어떤 단계로 진행되는가?

치매는 크게 초기, 중기, 말기로 나뉜다. 치매 초기에는 보통 사람들보다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낮아진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생기는 증상 중 하나이기 때문에 치매 초기 단계에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치매 환자들의 증상은 계속 진행하고, 약속의 세세한 사항을 잊어버려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거나 집에서 물건을 잘 찾지 못하는 등 실생활에서의 문제가 발생한다.

치매 중기가 되면 평생 해온 일, 가족 이름, 고향 등의 익숙한 정보는 기억하나 새로운 정보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 때부터 환청, 불면, 배회 등의 정신행동증상(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이하 BPSD)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말기가 되면 정신이상행동(BPSD)은 오히려 줄어들며, 인간으로서의 두뇌 활동도 확연히 줄어든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말을 시켜도 단어로만 이야기를 하는 등 환자의 반응이 매우 느려진다. 또한 움직임이 느려지고 걷는 능력을 상실하는 등 운동기능에도 문제가 나타난다.

치매는 치료 가능한가?

치료 가능한 치매가 있다. 예를 들어 치매의 종류 중 하나인 수두증의 경우, 뇌척수액의 순환 문제로 뇌에 압력이 가해져 뇌실(ventricle)이 팽창되고 이로 인해 치매, 보행실조(gait ataxia), 요실금 등이 나타나는 질환을 의미한다. 수두증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매는 수두증을 치료하면 치매 또한 극복 가능하다. 그러나 치매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충분히 치료 가능한 치매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노화의 한 현상으로만 여긴다.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경우에도 치료로 개선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치매가 중기로 진행되면 발생하는 망상이나 환각 등의 정신이상행동은 치매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를 요양원으로 모시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정신이상행동은 항정신적 약물이나 우울증 약으로 치료하면 상당 부분 개선 가능하다.

치매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치매’라고 통칭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치매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이며, 전체 치매의 약 50~80%를 차지한다. 노인반(senile plaque), 신경섬유농축체(neurofibrillary tangles) 등이 뇌에 쌓이면서 세포 독성을 일으켜 뉴런이라고 불리는 뇌신경 세포들을 잃는 것이다.

최근 ‘아밀로이드 베타의 축적을 없애면 치매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신약을 임상 연구 중이나 아직 임상에 성공한 약물은 없다. 해당 신약들은 임상 연구에서 뇌 속의 아밀로이드 베타 축적을 줄이는데 성공했으나 환자의 인지기능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현재 시판중인 치매 약물의 대부분은 콜린에스테라아제 억제제이다. 신경세포끼리 연결시켜주고 기억과 주의 및 각성에 관여하는 신경 전달 물질을 아세틸콜린이라고 하는데, 치매에 걸리면 세포 간 연결성과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 줄어들게 된다.

아세틸콜린을 분해시키는 콜린에스테라아제를 억제함으로써 세포의 연결을 보존하는 것이며, 이 같은 기전을 활용한 대표적인 약물로는 도네페질이 있다. 치매 약물 치료는 병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으나 증상의 악화를 지연시키고, 일부 증상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치매 약물 치료 시 초기에는 인지 기능 저하의 악화 속도가 둔화되며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고, 이상행동 조절에도 도움이 된다.

‘인지중재치료’의 개념에 대해 소개해 달라

인지중재란 ‘뇌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훈련과 활동을 통해 뇌의 기능을 강화하거나 보존해보자’는 원리이다. 예를 들어 뇌졸중 때문에 뇌의 특정 부위가 파괴된 경우, 신체의 움직임이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뇌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이러한 기능들이 복구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뇌졸중 후의 뇌에는 손상된 부분과 손상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며, 또 그 중간 단계에 걸친 부분이 있다. 뇌의 일부가 손상됐지만 남은 뇌 세포들이 이 부분을 대신하여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이를 활용해 역으로 팔과 다리를 움직임이고 자극을 줌으로써 뇌의 가소성(plasticity)를 증진시키고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활동인 재활치료(rehabilitation)을 인지기능의 영역에 적용해보자는 것이 바로 인지재활을 비롯한 인지 중재 치료이다.

치매 환자들의 경우 몸의 움직임이 줄어들고, 흥미를 잃어 목적 지향적인 활동을 수행하기 힘들다. ‘환자들에게 특정 자극을 준다면 뇌가 잃어버린 기능들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재활의 개념이 인지중재 치료이다.

인지중재치료의 효과나 근거에 대해 발표된 것이 있다면?

인지중재치료와 관련한 대부분의 연구에서의 공통점은 ▲치매 환자에게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았을 경우, ▲치매 환자에게 약물 치료만 진행한 경우, ▲치매 환자에게 약물 치료와 인지중재치료를 병행한 경우로 나누어 시험을 했으며, 이 때 약물 치료와 인지중재치료를 병행한 환자군에서 인지 기능이 가장 많이 보존되었다는 것이다. 치매는 ‘보존력’의 싸움이다. 가진 것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다만, 인지중재치료를 다룬 논문에서의 허점은 인지중재치료가 구조화되거나 정형화되지 않고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각 논문마다 인지중재치료에서 어떤 전략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여러 논문이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인지중재치료의 효과에 대한 근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인지중재치료를 시행중인 환자 사례가 있다면?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효성인지재활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약 20명 가량의 노인을 수용하고 있으며, 노인들의 뇌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몸의 움직임을 활성화하기 위한 체조를 비롯해 미술, 공작, 서로간의 대화 등을 통해 인지 자극을 일으킨다.

치매 환자들의 ‘고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홀로 지내며 뇌에 아무런 자극을 받지 못하면 뇌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뇌의 부피도 빨리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들 사이에서의 생활하며 뇌에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은 사람은 뇌의 부피가 줄어드는 속도가 느려진다.

우리가 흔히 ‘기억력’ 이라고 하면 방금 들은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기억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나와 관련된 주변의 사건을 기억하는 ‘삽화 기억’, 일일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순서대로 진행하는 ‘절차 기억’ 등이다. 치매 환자들에게는 주로 삽화 기억이 줄어들며, 절차 기억의 경우 치매가 진행된 상태에서도 남아있다. 이 말은 즉 우리가 절차 기억을 잘 활용하면 삽화기억은 줄어들더라도 남아있는 절차기억을 이용해 일상생활 기능을 잘 유지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또한 인지중재치료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인지중재치료는 알츠하이머형 치매에서 가장 특화되어 있는가? 인지중재치료를 적용할 수 있는 질환이 있다면?

인지중재치료는 경도인지장애 및 경도, 중등도 치매 환자 대상 인지기능 개선에 있어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받아 2017년 신 의료기술로 등재됐다. 그러나 이전부터 인지중재치료가 가장 활발하게 활용된 영역은 뇌졸중 또는 뇌 손상 환자들이며 최근에는 치매의 통합적 관리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치매에도 적용 중이다.

치매 완치를 위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치매 치료 및 관리에서 결정적인 요소를 꼽는다면?

치매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중요하다. 퇴행성 신경 질환 치료의 허들은 ‘병에 대한 지식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골절이라고 하면 뼈가 부러지는 등 직관적으로 알 수 있으나 치매와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의 경우 그렇지 않다.

치매는 약물치료 및 인지재활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면 개선할 수 있는 질환이다. 치매를 ‘관리하는 질환’으로 인식하는 환자들의 경우 가족들과 건강한 모습으로 보다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치매에 대한 개념을 조금 더 구체화하여 전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매와 관련해 정부의 지원이 더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치매국가책임제 덕분에 질환에 대한 인식이 대폭 개선됐다. 4년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이 처음 개원하고 치매 진료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환자들의 저항이 심했다. 치매를 노망으로 여기는 환자들이 많아, 병원에 방문한 환자들이 본인은 치매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치매는 ‘꾸준히 관리해나가는 병’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으면서 치매 치료 보편화에 일조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치매국가책임제가 ‘숨겨진 치매 환자 발굴 및 조기 진단’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치매 진단 이후의 사후 관리에 대한 부분이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치매안심센터에서 방문 사업, 방문형 인지중재치료 등을 실시하고 있으나, 치매 조기 진단 사업에 비해 지원이 적다. 진단 이후의 치매 관리를 위한 지원 체계가 보완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은?

올해 초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대중적이고 널리 알려진 영화들을 통해 상처와 분노, 자아, 관계, 기억, 사랑과 뇌, 결핍 등 다양한 정신적 문제로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이다.

최근에는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노인들에게 운동을 해야 할 시간을 알려주고 실제 운동 프로그램이 나와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연구 중이다. 현재 프로그램을 짜고 있으며, 이를 하나의 상품 또는 의료기기로 출시하고자 한다. 디지털 인지중재치료의 좋은 점은 의료진이 없이 가정에서도 진행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대인 대부분이 보유하고 있는 스마트폰은 정보를 전달, 확산, 증폭하는 하나의 중요한 의료 전달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 치료가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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