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안전 개장’ 간판을 내걸고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해운대구청이 야심차게 도입한 ‘명함 우체통’ 제도는 ‘전시행정’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명함 우체통 외에 인파를 관리할 방법도 전무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해수욕장 방역의 ‘빈틈’을 우려하고 있지만, 해운대구청을 포함한 관리 당국은 뒷짐을 지고 있다.

전국 267개 해수욕장이 순차적으로 ‘안전 개장’을 예고한 가운데 1일 국내 최대 규모의 해운대해수욕장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장을 했다. 안전 개장이란 파라솔·텐트 등 편의시설을 제외한 필수 안전시설과 안전요원만을 배치한 채로 해수욕장의 문을 여는 것이다.

해운대해수욕장은 최근 ‘안전 개장’을 위해 ‘명함 우체통’ 제도를 도입했다. 명함 우체통이란 말 그대로 명함을 넣어두는 빨간 우체통이다. 해운대구 측은 명함 우체통 설치의 취지에 관해 “명함 우체통에 시민들이 명함을 넣어두면 어떤 시민들이 해수욕장을 방문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해운대구 우체통
사진=해운대구 우체통

그러나 해운대구 주민의 반응은 싸늘하다. 동선 파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물론 ‘진시행정’이라는 것.

부산 해운대구에 거주하는 한 시민(34)은 “지난주부터 설치한 명함수거함 정책 실효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아침 6시쯤 산책하면서 8개 통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봤는데 초콜릿 과자의 껍데기가 있었다. 누가 명함을 우체통에 넣을지 모르겠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전시행정이다. 너무 순진하고 아기 같은 발상이다”고 지적했다.

해당 시민 제보에 따르면, 8개의 명함 우체통에 들어있는 명함의 수는 총 4장뿐이었다. 나머지는 동선 파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신용카드, 아파트 전단지, 식당 또는 교회 명함 등이 들어 있었다. 우체통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동선 파악의 흔적으로, 명함이라는 수단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학생들처럼 명함이 없는 경우 동선 파악 자체가 어렵다.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 중 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많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동선 파악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물론 해운대 구청은 명함 대신 방문 메모지를 쓰도록 하고 있지만 인파가 해수욕장으로 한꺼번에 몰리는 상황에서, 젊은 층이 방문메모지를 작성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앞서의 시민은 “정부가 감염 확산을 방지할 의지가 있다면, 해수욕장에 출입구 등을 만들어 따로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 요즘 점점 인파가 많아지고 있다”며 “우체통만 덜렁 배치하는 것은 방역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사진=우체통 클로즈업
사진=우체통 클로즈업

실효성 논란’에 대해 해운대구 측은 원론적인 입장만을 전했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5~6월에는 해수욕 인원이 적은편이다”며 “본격적으로 인파가 몰리는 7월부터 인력을 배치하고 명함 수집 유도 등 동선 파악이 가능하도록 안내할 예정이다. 인력도 추가하고 홍보 포스터도 추가할 계획이다”고 말을 아꼈다.

더욱 큰 문제는 해운대해수욕장이 명함 우체통 외에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확인할 수단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감염 가능성이 ‘제로(0)’가 아닌 만큼 최소한의 통제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사방이 뚫려있고 환기가 용이한 만큼 클럽 등 고위험시설보다는 덜하지만, 인파가 몰리고 사람들의 간격이 좁아지면 사람 간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가 발생할 수 있다”며 “마스크 쓰기라도 지켜야 하지만, 날씨가 더워지면 이를 지키기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탈의실·샤워실 등 밀접 접촉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며 “당장 집단감염이 창궐하지 않은 만큼 QR코드를 통한 관리 등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출입구를 만들어 발열체크를 하거나 방역 수칙 등을 안내하는 조치는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해운대구 측은 소극적인 입장으로 일관 중이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백사장의 길이가 1.5km에 달하는 대형 해수욕장의 출입 인원을 전부 통제하기는 어렵다. 관광안내소 등 시설을 방문하는 사람들에 대한 발열 체크는 가능하지만, 산책 등으로 단순 방문하는 사람들까지 막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해수부의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전면적인 통제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수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해수욕장에서의 생활 속 거리두기지침 및 운영 대응지침”을 살펴보면, ‘가급적 해수욕장 주 출입구를 설치(표시)하여 이용객에게 마스크 쓰기 및 개인위생 준수 안내’라는 항목이 있었다. 해운대구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출입구를 설치하는 등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