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승 파트너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사진=정혜승 변호사
사진=정혜승 변호사

법률에는 수많은 분야가 있지만 ‘의료법’이나 ‘국민건강보험법’은 교과서도 거의 없을 정도로 생소하고 낯선 분야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은 물론, 법조인들도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건의료 분야 특성상 개인의 건강과 생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전문가’의 필요성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높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본지는 최근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반우’에서 보건의료 및 헬스케어 관련 거의 모든 분야에 정통하며, 특히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에 대한 자문 및 분쟁에 가장 알맞은 솔루션을 제시하는 정혜승 변호사를 만나 법조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보건의료와 헬스케어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다양한 법조계 분야 중에서 ‘보건의료’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법학자’의 관점에서, 보건의료 분야는 ‘공부’할 요소가 많다. 보통 학부나 사법연수원(전문대학원)에서는 교과서를 통해 헌법이나 형법, 상법, 민법 등의 과목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의료법이나 건강보험법은 별다른 교과서나 연구자료가 드문 편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법률 분야를 공부할 때, 먼저 책으로 제반 지식을 습득한다. 그 후에 관련 판례나 법률 사전 등을 참고해 확장해 나간다. 반면 의료 분야는 관련 내용을 집대성한 교과서를 찾기 힘들었다.

때문에 업무를 시작했을 때, 의료법은 대한의사협회가 의과대학 학생들을 위해 발간한 ‘의료법 원론’이라는 책을 많이 참고했다. 건강보험법 역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민법 전공 교수님께 의뢰해 만든 해설서를 주로 활용했다.

이로 인해 보건의료 분야는 일반인은 물론 법조인에게도 생소한 부분이 많다. 또한, 아직 미개척된 분야가 많아 변호사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꼽자면?

일전에 맡았던 사건 중에 의료법 제33조 제1항에 관련해 건보공단과 의료기관에서 벌어진 소송이 있었다. 이 조항을 살펴보면, ‘의료인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료인은 자신이 개설한 의료기관 내에서만 의료업을 행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5층 규모의 건물에 2개의 의료기관이 입점해 있었다. 1~3층은 정신병원이었고, 4~5층은 요양병원이었다. 그런데 이 의료기관들은 각각 개별적으로로 개설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료법인으로 묶여 있는 구조였다. 즉, 의료법인이 요양병원과 정신병원을 개설하고, 해당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법인에 고용된 형태였다.

그런데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실제 근무를 하고 보니 거동이 불편한 요양병원 환자들이 5층까지 올라오기가 힘들다는 점을 알게 됐다. 때문에 환자들의 방문 편의성을 위해 요양병원 의사가 1층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일부 환자의 진찰을 하게 됐다.

건보공단은 바로 이 점을 문제 삼았다. 앞서 언급한 33조 1항을 근거 삼아 요양병원이 아닌 곳에서 발생한 요양급여와 약제비를 전액 환수 조치한 것이다. 이외에도 요양병원 의사를 형사 고발까지 했다. 법 조항만 살펴보면 결코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맹점이 있다.

기존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제33조 제1항에 대한 조항은 의료기관 ‘개설명의자’에게만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흔히 ‘페이 닥터’라고 불리는 봉직 의사들은 본인이 설립한 의료기관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개설 의사(=개설명의자)는 개설한 곳에서만 진찰하는 것이 맞지만 봉직 의사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앞서의 요양병원-정신병원 사건은 개설명의자가 ‘법인’이다. 이 병원은 개인이 개설한 것이 아니므로 해당 봉직의에게는 원칙적으로 의료법이 적용되지 않았고, 실제로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 의료 분야를 담당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따로 없는가

아무래도 생소한 분야다 보니 어려움이 아예 없지는 않다. 수사기관이나 법원 등 사건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의료법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조금 난감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변호사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의료 분야의 전문가는 당연히 의료인이다. 때문에 의료 관련 소송은 의학적인 내용이 많아 일반인들은 물론 법조인에게도 낯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내용은 다른 의사나 의료기관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자료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법원에 잘 전달하는 것이 ‘좋은 변호사’라고 생각한다. 또한, 서울을 포함한 일부 지역의 경우, 의료 소송은 해당 분야를 전담으로 맡는 특정 인력들에 우선 배정하므로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하나만 꼽자면?

답답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법령에 따르면 MRI(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와 CT(전산화단층촬영장치), 마모그래피(유방촬영용장치) 등의 특수의료장비를 사용하는 의료기관은 보건당국으로부터 해당 장비들에 대한 정기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담당했던 사건은 MRI를 취급하는 의료기관이었는데, 규정상 기기 도입 이후 2년까지는 제조사를 통해 해당 기기가 영상 출력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는 서류만 제출하게 돼 있다. 3년 차부터는 출장을 통해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의료기관은 여러 대의 MRI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실수로 그중 1개에 대한 서류 제출을 2년 동안 누락한 것이다. 그렇게 3년 차가 되자, 건보공단이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해당 기기를 통해 찍은 모든 급여를 환수 조치했다.

MRI가 특수한 장비라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고, 의료기관이 제출해야 할 서류를 누락한 것은 잘못이 맞다. 하지만 1, 2년 차 MRI 영상에서 별다른 문제점도 없었고, 실제로 환자에게 발생한 위험도 없었는데 당시 법원은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지도 않고 환수처분 취소 소송을 기각해버렸다.

≫ ‘진료의 타당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듯싶다

맞다. 법과 제도는 ‘어떤 취지’를 갖고 만들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앞서의 사건은 의료법이 금지하고 있는 취지와 건강보험 요양급여가 존재하는 취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 특히 행정 소송에 대한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난해 선고된 사건 중에, 의료인의 중복운영금지조항에 대한 사건이 있었다.

의료법 제33조 제8항에 따르면 의료인이 이중으로 운영한다고 평가된 의료기관의 경우, ‘개설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해 건보공단으로부터 지급된 요양급여를 전액 환수하게 돼 있다. 의료의 지나친 상업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다.

이 사건의 경우, A 의료인이 본인이 운영하던 병원을 후배인 B 원장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다른 곳에서 새롭게 병원을 개설했다. B 원장은 원래의 병원에서 성실히 진료했지만, 건보공단은 단순히 법 조항을 위반했다는 사실로 약 90억 원에 달하는 요양급여를 환수 처분했다.

하지만 B 원장은 단지 선배의 병원을 이어받았을 뿐, 진료 과정에서 어떠한 불법성도 없었고 이 과정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고등법원도 단순히 이중개설 의료기관이라는 사실만으로 힘들여 진료했던 비용 전액을 환수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환수처분을 취소한다는 원심판결이 대법원에서까지 유지됐다.

≫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사건의 발단이 된 법 조항은 개정 당시부터 위헌 논란이 있었다. 의료의 상업화 방지라는 본래의 취지보다 의료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의료법과 건강보험법은 개인의 건강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한 연구나 논의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혜승 변호사 약력

한양대학교 법학과

한양대학교 법학과 석사과정(헌법) 수료

제50회 사법시험

사법연수원 40기 수료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법무법인 반우 파트너 변호사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비상임조정위원

서울특별시 개인정보 심의위원회 위원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변) 학술단 단장

AHP(서울대학교병원 고위자과정) 제13기 수료

법률신문 판례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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