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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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스마트워치인 애플워치는 심전도 측정기능을 탑재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 기능을 막아놓았다. 아직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팜뉴스 취재결과, 약간의 투자(?)만으로도 해당 기능을 ‘잠금 해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명백한 불법행위인 데다 의료계도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정작 단속에 나서야 할 보건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애플워치의 심전도 측정기능은 현재 미국에선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사용할 수 있지만, 국내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승인을 받지 못해 해당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막아놓은 상태다.

하지만 SNS와 인터넷 등을 통해 심전도 측정기능의 ‘활성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광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팜뉴스 취재진이 온라인 쇼핑몰 검색창에 ‘애플워치 심전도’라는 검색어를 입력하자, 다수의 업체가 검색됐다. 이들은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받고 애플이 잠가둔 애플워치의 심전도 기능을 풀어주고 있었다.

[사진-1. 온라인 쇼핑몰 검색창 캡쳐 화면]
[사진-1. 온라인 쇼핑몰 검색창 캡쳐 화면]

팜뉴스 취재진은 검색된 업체 중 한 곳을 통해 애플워치의 심전도 기능 활성화를 의뢰했다.

활성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5000원 남짓 금액을 결제하자 활성화 업체 담당자로부터 메신저 앱을 통해 ‘사전 준비 사항’을 전달받았다.

업체 담당자는 “핸드폰과 스마트워치의 운영체제(OS)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고 제조사 홈페이지에서 새로운 계정으로 가입해야 한다”며 “준비가 완료되면 새로 가입한 계정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전했다.

새 계정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묻자 업체 담당자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활성화 과정은 기존에 고객이 사용하던 계정이 아닌, 새로 가입한 계정을 통해 진행된다. 심전도 기능이 활성화되면 개인정보는 모두 삭제하며 이 모든 과정은 공기계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업체에서 요구한 대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계정 정보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전도 기능이 ‘활성화’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스마트워치가 ‘불법 의료기기’로 탈바꿈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분이었다.

[사진-2. 애플워치에 생긴 심전도(ECG) 아이콘과 앱 실행 모습]
[사진-2. 애플워치에 생긴 심전도(ECG) 아이콘과 앱 실행 모습]

새롭게 생긴 심전도 아이콘을 클릭하자, 화면에 “손가락을 ‘Digital Crown(기기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버튼)’에 대고 있으십시오”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버튼에 손가락을 대자 30초간 심전도를 기록했고, 그 데이터는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취재진의 평균 심박수는 65BPM(분당 박동횟수)으로 측정됐고, 심전도가 정상을 의미하는 ‘동리듬(sinus rhythm)’이란 문구와 심전도의 파형을 기록한 그래프도 보였다. 그 아래에는 “이 심전도는 심방세동의 징후를 보이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도 있었다.

[사진-3. 취재진의 심전도(ECG) 세부사항]
[사진-3. 취재진의 심전도(ECG) 세부사항]

‘의사 제출용 PDF로 내보기’라는 항목도 눈에 띄었다. 해당 항목을 클릭하자, 30초간 측정된 심전도 그래프 전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성화 과정에 대해 문제점은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업체 담당자는 “전혀 불법이 아니다”라며 “이미 신문 기사를 통해 합법이라고 밝혀진 바 있다. 다만 제조사의 정책에 따라 갑자기 해당 기능이 막힐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애플워치의 심전도 기능을 임의로 해제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국내에서 애플워치를 심전도 측정기기로 쓰려면, 우선 식약처가 애플워치를 의료기기로 허가해야 한다. 그러나 애플워치는 국내에서 아직 의료기기로 허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법 제26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허가 또는 인증을 받지 않았거나 신고를 하지 않은 의료기기를 수리‧판매‧임대‧수여‧사용할 수 없다. 제조‧수입‧수리‧저장도 불가능하다. 애플이 국내 출시한 애플워치가 심전도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비활성화한 것도, 의료기기법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식약처는 안일한 모양새를 취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애플워치가 정식 의료기기가 아닌 것은 맞다”며 “심전도 활성화에 대한 문제 역시 인지하고 있다. 다만, 위법성에 대한 여부는 앞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실제 단속까지 이어지는 데는 시일이 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문가들은 스마트워치를 섣불리 정식 의료기기로 인정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사진-4. 의사 제출용 심전도 PDF]
[사진-4. 의사 제출용 심전도 PDF]

익명을 요구한 전문의는 “심전도 측정기기 자체는 부작용이 거의 없어 기기에 대한 위험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하지만 심전도 해석은 기계 판독이 아닌 전문가가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확인해 판단해야 한다. 심전도 데이터가 일반인들에게 섣부른 의학적 판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번 사례가 용인되면, 차후 침습적으로 사용하는 의료기기도 스마트워치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넘어갈 수 있다”며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혼란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학술적 연구도 의료계의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심지어 스마트기기로 측정한 심전도 데이터는 100% 신뢰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도 찾아볼 수 있었다.

칼둔 타락지(Khaldoun G. Tarakji)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심혈관의학부 교수팀은 심방세동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스마트기기를 통한 심전도 측정 결과와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사용하는 12유도 심전도 검사(12개 전극을 이용한 심전도 검사법) 결과의 정확성을 비교해 국제학술지 ‘미국심장학회지’ 2018년 5월 자에 발표했다. (DOI: 10.1016/j.jacc.2018.03.003)

연구팀이 사용한 스마트기기는 애플워치와 연동해 사용하는 ‘카디아 밴드’였다. 연구가 발표될 당시는 아직 애플워치에 심전도 측정기능이 탑재되기 전이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카디아 밴드만으로 측정했을 때 34%의 환자는 심방세동 환자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약 3분의 1에 달하는 환자를 놓친 것이다. 반면 12유도 심전도 검사에 따라 의사가 진단했을 때 정확도는 87%였다.

[표-1. 스마트워치 심전도 검사 vs 12유도 심전도 검사 정확성 비교]
[표-1. 스마트워치 심전도 검사 vs 12유도 심전도 검사 정확성 비교]

특히 카디아 밴드로 심방세동을 잡아내지 못했던 환자들의 기록을 의사가 재검토했을 때, 의사는 이들을 모두 심방세동 환자로 분류하는 데 성공했다. 스마트기기에 의존했다가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제임스 입(James E. Ip) 미국 코넬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국제학술지 JAMA 지난해 1월 11일 자에 게재한 논평을 통해 “부정확한 심전도 검사결과와 잘못된 심방세동 또는 빈맥 경고 신호로 잘못된 진단이 내려진다면, 불필요한 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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