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 팀장(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진=이동근 팀장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새로운 치료제와 백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램데시비르, 클로로퀸 등 생소하게 들렸던 치료제 이름도 이제는 친숙하다. 의약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이렇게 높았던 시대도 없었다.

하지만 ‘관심’과 ‘검증’은 다르다. 관심은 쏟아지고 있지만 국민들 개개인이 의약품의 값어치에 대한 검증에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제약사들의 의약품의 가치를 지나치게 부풀려 과도하게 이윤추구를 할 경우 이를 막을 ‘감시자’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안전성이 떨어지고 효과가 부족한 약도 다르지 않다. 그런 약이 의약품 시장에서 수년 동안 유통된다면 국민들의 건강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지만 국민들은 어떤 약들이 좋은 약인지 알 길이 없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의 존재 이유는 여기에 있다. 건약의 약사들은 전문가의 시각으로 지난 30년 동안 오로지 환자와 국민의 편에 서서, 의약품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칙을 감시해왔다. 팜뉴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구둣발이 닳도록, 현장 곳곳을 누비고 있는 건약의 이동근 정책 팀장을 만났다.

1987년 6.10 항쟁이 전국을 민주화 열기로 달아 올리던 그때, 보수적이라고만 치부해 왔던 약사사회에서도 호헌 철폐를 위한 서명 운동이 일어났다. 6월 항쟁 이후 서명을 주도했던 약사들은 자신들이 있는 지역 곳곳에서 뜻있는 약사들을 규합하고 단체를 만들었다.

부산의 약성(약사의 소리), 서울의 건강사회실현약사회 등 전국의 약사 단체들이 모였다. 지역 약사 조직들은 88년부터 서로 교류하다가 1990년 1월 21일 전국 단일 조직,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를 창립했다.

이동근 정책팀장은 “6월 항쟁 이후 시민사회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며 “특히 1988년 문송면 씨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수은중독으로 몇 개월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6월항쟁’ 이후 ‘문송면 사망 사건’ 건약 태동의 시작

그러면서 “산업재해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이었지만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의 단순 사망으로 처리했다. 그런 것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약사들의 투쟁 역사가 쌓였고 결국 건약 창립으로 이어졌다”라고 설명했다.

‘소외된 약자’를 위한 약사들의 목소리, 건약을 태동시킨 뿌리다.

2000년대 이후 건약은 보건의료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고 의약품의 접근권을 높이자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왔다. 건약이 환자들을 위해 의약품의 약가 문제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수행해온 까닭이다.

건약은 당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의 약가가 한 알에 2만 원에 육박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 결과, 제약사의 탐욕으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은 침해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이후 다른 국가에서는 안전성 문제로 퇴출됐지만 우리나라에서 시판 중이던 약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등 의약품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렇다면, 이동근 팀장이 ‘약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건약’이라는 약사단체에 합류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팀장은 “대학시절, 사실 약이나 약사에 대한 직업적 관심은 적었다”며 “하지만 2008년 울산에서 건약이 개최한 여름 캠프 이후 건약 활동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다가,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2016년부터 건약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점차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건약의 활동에 금세 녹아들었다. 이 팀장은 “제도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비판하는 활동이 흥미로웠다”며 “특히 의약품과 보건의료체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이동근 팀장은 건약이 그동안 우리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시민운동이라는 게 대부분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글리벡 투쟁을 비롯해 타미플루 사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의약품 특허 강화 철회 요구 등 여러 시민운동에서 쓴맛을 봤다”고 털어놓았다.

‘리베이트 2아웃 제도’ 흐지부지, 아픈 사건

이어 “보람을 느낄만한 일보다는 오히려 아쉽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안타까웠던 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특히 힘들었던 일화로 ‘리베이트 2아웃 제도’를 꼽았다. 당시 의약업계에서는 약품 입점을 위해 약국-제약사 간 뒷돈이 오가는 리베이트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번 이상 리베이트로 적발됐을 경우 해당 약품을 건강보험 급여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도입해 처벌을 강화했다. 당시 건약은 리베이트 투아웃제에 대해 찬성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환자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해당 법안은 흐지부지됐다.

이 팀장은 “당시 적발됐던 약들은 모두 대체 약이 존재했다. 해당 약품을 급여에서 제외한다고 해도 환자들의 권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의학적이지 않은 이유로 환자들과 크게 부딪치면서 가슴이 아팠다. 특히 그동안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주력해온 건약의 입장에서, 토론회 등에서 환자단체와 대립해야 하는 상황에 회의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뇌기능 개선제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 재평가 추진은 건약의 대표적인 성과다. 건약은 2017년부터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약효 문제를 제기했다. 콜린알포세레이트에 관한 임상시험이나 사후적 평가들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전혀 없다는 점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단순히 이탈리아에서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나라에서 치료제 허가를 주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며 “우리나라에서 보통 치매 예방약으로 처방해왔지만 치매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임상 논문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7년부터 콜란알포세레이트 약효에 대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한 이유“며 ”결국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고, 올해 건보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재평가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일종의 작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건약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 사태 속에서 치료제와 백신에 관한 공적연구와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부각 됐기 때문이다.

건약은 제약사의 과도한 이윤추구로 감염병이나 희귀난치질환에 대한 치료제 개발이 등한시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감염병 또는 희귀질환난치질환치료제의 개발이 어려운 것은 물론 시장 수요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나서기를 주저한다는 것.

정부 주도의 공적 연구는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일부 다국적 제약사들은 공공연구의 성과마저 전적으로 소유하려고 한다는 게 이동근 팀장의 문제의식이다.

이 팀장은 “코로나19는 공공연구를 통해 감염병 연구가 이뤄졌는데도 그 이윤을 제약사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에게 당근을 주는 것 아니라 채찍을 함께 써야 한다. 공공연구를 통해 개발된 치료제 등 성과물은 공적인 통제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의약품 특허권 ‘성역’ 아니다

실제로 유럽 등 일부 국가들은 의약품 접근권에 방해가 되는 특허 장벽을 완화하는 조치를 펼치고 있다. 칠레와 에콰도르의 경우 의회에서 코로나19 관련 강제실시(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특허를 사용)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프랑스‧캐나다‧독일 등은 감염병 대응을 위한 강제실시를 명령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 팀장은 “국제무역기구(WTO)의 지식재산권 협정도 국가위기상황이나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는 특허권 무력화가 가능하다고 명시했다”며 “실제로 9‧11 참사 이후 알카에다가 미국 백악관과 국회에 ‘탄저균 우편 테러’를 감행하자, 미국은 탄저병에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에 대한 강제실시를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도 다르지 않다”며 “이스라엘은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치료제인 칼레트라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자, 칼레트라에 대한 강제실시를 집행했다”며 “이후 칼레트라를 개발한 애브비는 칼레트라에 대한 전 세계 특허권을 포기했다. 특허권은 인권처럼,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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