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재확산으로 혈액 수급난 문제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태원 집단감염을 포함한 산발적인 지역 감염이 이어진 탓이다. 혈액 부족으로 환자들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혈액의 집을 찾는 이들은 줄어들고 있는 상태다. ‘팜뉴스’가 서울 인근의 헌혈의집 르포를 통해 혈액수급난의 ‘현실’을 돌아봤다.

13일 오전 11시경 팜뉴스 취재진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헌혈의집 신촌연대앞센터를 방문했다. 대학교 앞 헌혈의집이라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기석은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한 명의 시민만이 헌혈을 마친 뒤 앉아있었다.

사진=헌혈의 집 대기실
사진=헌혈의 집 대기실

헌혈용 베드 역시 한 자리만 채워져 있는 상태였다. 나머지는 텅텅 비어있었다. 보통 5월은 대학생들의 헌혈이 집중적으로 이어지는 시기다. 코로나19 국면이 끝나고 개강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 대기석과 헌혈용 베드가 최소 절반 이상은 채워져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헌혈을 희망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근무 중인 간호사가 더 많았다. 신촌연대앞센터 소속 A 간호사는 “평소 인원의 약 60~70% 정도다. 3분의 1이상이 줄었다는 뜻”이라며 “특히 대학교 앞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온라인 개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온라인 수업 진행으로 인해 인근 대학생의 발길이 끊기면서 헌혈의집이 치명타를 입었다는 것.

A 간호사는 또 “처음 헌혈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그나마 헌혈을 여러 차례 했던 헌혈자들의 재방문 때문에 간신히 혈액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팜뉴스 취재 결과, 10시에 문을 연 이후 이날 오후 1시 50분까지, 헌혈의집 신촌연대앞센터에서 헌혈한 인원은 단 4명에 그쳤다,

‘격세지감’이었다. 지난 3월 서울에 있는 또 다른 헌혈의집인 서울 동작구에 있는 이수센터를 찾았을 당시에도 기자의 문진을 담당한 감호사는 “혈소판‧혈장 등 성분 헌혈보다 전혈 수급이 심각한 상황이다”며 전혈 헌혈을 권유했다. 전혈이란 적혈구를 포함한 전체 혈액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앞서 신촌연대앞센터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태원 집단감염 등 산발적 지역감염이 이어진 5월 동안, 혈액 수급난이 한층 더 악화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총 5일분(1일분은 약 5700여 명에게 수혈할 수 있는 양)의 혈액량을 확보해야 안정적인 혈액 수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13일 본부는 보유 중인 혈액량을 약 ‘2.7일’로 밝혔다. 평소의 거의 절반 수준이란 얘기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지난 2~3월엔 3~4일분의 혈액 보유량을 유지하다가, 3월 16일부터 2주 동안 일시적으로 5일분 선을 회복했다”며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4월부터 헌혈 분위기가 다시 냉각돼 지난 8일부터 혈액 보유량이 2일대까지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기자가 두 번째로 찾은 헌혈의집인 신촌센터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신촌센터는 2호선 신촌역에 가깝고 2층에 있기 때문에 신촌연대앞센터(8층)보다 상대적으로 층수가 낮아 접근이 용이한 센터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헌혈자를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신촌센터 소속의 간호사 B 씨는 “헌혈자의 인원이 평균적으로 3분의 2 정도로 줄었다”며 “혈액 수급이 원활하려면 신규 헌혈자 유입이 필요한데, 현재 신규 헌혈자의 발길이 끊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2시 30분까지 신촌센터에서 헌혈한 인원은 총 12명에 불과했다.

사진=헌혈센터 내부 모습
사진=헌혈센터 내부 모습

그렇다면 혈액 수급난이 심각한데도 시민들이 헌혈을 꺼리는 이유는 뭘까. 한마음혈액원이 명동역 인근에 마련한 헌혈버스 앞에서 만난 김모씨는 “돕고는 싶지만 아무래도 헌혈의 특성상 주삿바늘도 있고, 또 갇힌 공간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안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구조적인 문제도 헌혈을 꺼리는 원인 중 하나다. 앞서 두 헌혈 센터의 공통점은 채혈자와 헌혈자 그리고 헌혈자와 헌혈자 사이 접촉을 막을 수 있는 유리 가림막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진=명동 헌혈차 외관
사진=명동 헌혈차 외관

헌혈자들은 가림막 없이 촘촘히 붙어있는 헌혈용 침대에 누워야 하는 구조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최소 수십 분, 길게는 1시간 이상 진행되는 헌혈 과정에서 오랫동안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옆에서 숨을 쉬며 헌혈을 해야 한다. 감염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지만 서로의 침이나 콧물 등이 튀는 걸 막아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물론 센터 측은 마스크 착용, 발열 확인, 손소독제 사용 등 기본적인 방역 수칙은 비교적 준수하고 있었다. 헌혈 후 침대 소독은 헌혈자가 바뀔 때마다, 전체 소독은 하루 2회씩 진행하는 등의 방역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헌혈용 침대 사이에 가림막이 없는 현실은 헌혈을 더욱 기피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혈액관리본부 측은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베드 간 가림막에 관련해 대안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다만, 간호사와 헌혈자에 대한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확산 방지에 노력 중이다. 확진자가 발생했던 다른 노량진센터에서도 소속 간호사가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페이스북에 ‘4‧19혁명과 헌혈, 나눔의 역사’라는 글을 올리며 국민들의 헌혈 참여를 독려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전은 없었고, 혈액 보유량은 바닥을 찍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간호사는 “헌혈자의 팔 위쪽으로 유리 가림막을 설치한다면 헌혈자는 불안감을 덜 느낄 것”이라며 “헌혈 수급난이 심각하다면 정부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써서라도 불안감을 해소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방역을 잘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헌혈하라고 말하기 전, 먼저 안전장치 구비 등을 통해 헌혈자 보호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그 점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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