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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확찐자’에 대한 단상
[기자수첩] ‘확찐자’에 대한 단상
  • 최선재 기자
  • 승인 2020.05.1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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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선재 기자
사진=최선재 기자

지난 2월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었을 무렵 나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아랫배’였다. 배가 이전보다 점점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 헬스장에 가지 못한 탓이다. 헬스장 장기 이용을 위해 회원권 등록에 투자한 비용은 무려 100만원이 넘었다. 거울 앞에서 한껏 부풀어 오른 아랫배의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짜증이 났던 이유다.

"[남양주시청]. 코로나 19 별내동 확진"

별내동에 확진자가 나왔을 당시 내가 다니던 헬스장은 일주일간 문을 닫았다. 대구 집단 감염 사태가 소강 국면에 들어선 이후에도 경기도청의 헬스장 폐쇄조치가 이어졌다. 헬스장이 가까스로 영업을 재개했지만 헬스장에 가려고 결심할 때마다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직장 동료들에게 “100만원 넘게 들여 운동을 하고 식단을 관리했는데 배가 다시 나와서 짜증이 난다”는 푸념을 늘어놓은 이유다. 심지어 ‘확진자가 없는 지역 사람들은 계속 헬스장에 가겠지. 배도 나오지 않았고 몸매도 유지하고 있겠지’라는 시기심도 들었다.

그러다가 지난 7일, 약 2달 반 만에 헬스장을 찾았다. 확진자 수가 줄어들었고 정부의 생활방역 전환 조치가 영향을 미쳤다. 헬스장에 도착했을 당시에도 기분은 썩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운동을 계속할수록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익숙한 얼굴들이란 헬스장 단골손님이다.

이들의 날렵했던 턱선도 둥글게 변해 있었다. 운동복 위로 출렁이는 뱃살도 보였다. 담당 PT 트레이너는 “쉬는 동안 너무 많이 먹어서 15kg나 쪘다”고 토로했다. 다른 트레이너들 역시 헐렁한 형태의 박스형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만큼 살이 쪘다는 증거였다.

점차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코로나19로 운동을 못했구나, 나만 이렇게 배가 나온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위안을 얻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스스로에 대한 ‘절대평가’만 하다가, 헬스장에서 ‘상대평가’를 거치면서 운동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사라진 것이다.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있었다’는 상대적인 메시지는 생각 이상으로 위로를 가져다 주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뱃살 때문에 속상했던 마음을 잊고 다시 운동에 집중한 계기다.

운동을 마친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문득 코로나19 사망자와 유가족들이 떠올랐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와 달리 우리나라 정부 방역의 상대적 우위가 드러났다는 이유로 이들도 나와 같은 위로를 느낄까. 유가족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줄곧 나의 시선이 ‘단순히 살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세계’에만 머물러있었던 것이다. 나같은 ‘확찐자’의 시선은 딱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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