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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고 치는’ 국가용역사업?…제약업계, 불신 ‘증폭’
‘짜고 치는’ 국가용역사업?…제약업계, 불신 ‘증폭’
  • 김응민 기자
  • 승인 2020.03.2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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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건강보험 약제비 지출 효율화' 문제점과 대안
건보재정은 고정, 신약-제네릭 간 지출 비중만 저울질
전문가, “실효성 의문”…"약제 재평가 근거로 활용되나" 우려

중증 및 희귀질환 보장성 강화를 시행하기 위한 정부의 재원 마련 방법을 두고 불신의 목소리가 극에 달했다. 해외 약제비 관리 현황 등을 참고해 국내 의약품 지출구조를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해당 연구가 건보재정 확충이라는 목표를 두고 있는 만큼, 연구의 방향성 자체가 이미 정해졌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현재 ‘건강보험 약제비 지출 효율화 방안’이라는 연구를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 중이다. 연구 기간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로 예정돼 있으며, 주요 연구 내용은 ▲국내 약제비 지출구조 분석(2014년~2018년) ▲재외국의 약제비 지출구조 및 약제비 관리방안 조사 및 비교 ▲약제비의 합리적인 지출구조 설계를 위한 정책적 제언 등이 있다.

하지만 정부의 연구용역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말이 많다. 연구의 방향성이 사전에 이미 어느 정도 조율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제약업계 약가 전문가는 “이번 연구의 수행 배경은 국내 약제비 중 신약의 지출은 적고 제네릭이나 특허만료 의약품의 지출은 높다는 것이 복지부 관계자의 설명이었다”며 “즉, 신약 지출을 늘리기 위해 기존의 다른 약제들의 재정은 절감하겠다는 뜻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고정한다는 것이 복지부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 약제비 중 신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는 것은 사실이다”며 “이는 최근 국내에서 발표한 연구자료나 지난해 국회 세미나에서 나온 주요 선진국과의 비교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호서대 이종혁 교수는 최근 신약이 국내 건강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신약이 우리나라 약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161조원 중 8조원으로 약 5% 수준이었다. 이 수치는 선별등재제도 도입 이후 12년간 누적된 자료를 기준으로 작성했다.

또한 최근 5년을 기준으로 했을 땐 신약의 비중이 약 10% 정도로 나타났다. 2018년을 기준으로 봤을 땐 약 12%를 차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한 자료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국회 세미나 ‘신약의 사회적 가치와 건강보험 재정 관리방안’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평균 신약 지출 비중은 50%가 넘었고 그 중 A7 국가 또한 50%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 비중이 20%에 불과했는데, 이러한 수치는 과거 10년간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즉, 최근 호서대 연구진이 발표한 자료와 작년 국회 세미나의 자료는 수치상의 차이는 있지만 두 자료원 모두 신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적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표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에 ‘한계점’이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앞서의 전문가는 “해당 연구는 현재 건강보험종합계획에 담고 있는 약제 재평가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재평가의 타당성은 확보할 수 있을지라도 그 방법이 적합한지에 대해선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례로 해외 약가를 기준으로 만성질환 및 노인성질환의 특허만료 의약품 약가를 재조정하는 것을 들 수 있다”며 “이러한 약제군은 해외보다 비싸다는 당위성은 쉽게 찾을 수 있으나 그 약이 정말 비싼 것인지, 어떤 나라를 참조할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시행한 기등재의약품 약가 일괄인하의 경우, 정책 수립 단계에서 일괄인하가 아닌, 약가 인하 방법에 대한 여러가지 방법이 논의됐다. 하지만 워낙 변수가 다양하고 복잡한 부분이 많아 결국 등재된 모든 의약품에 대해 ‘일괄인하’를 적용한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참고할 해외 약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

또 다른 전문가는 “해외 약가를 참고한다는 말 자체는 쉽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며 “당장 참고해야 할 외국에 대한 정의도 불분명하다. 전통적으로 참고했던 A7을 기준으로 할지, 최근 3개국(대만‧캐나다‧호주)이 추가된 A10을 고려해야 할지, 혹은 OECD 평균으로 정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나라를 참고해야 할지 정해도 ‘약가’에 대한 이슈가 남아 있다”며 “외국 약가의 평균값을 써야 할지 아니면 최대값이나 최소값을 적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간 정부가 해외 약가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태도를 고수해온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앞서의 전문가는 “그간 제약업계가 외국 대비 국내 약가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고 주장할 때마다 정부는 늘 그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다”며 “그 이유는 바로 외국 약가를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에서 발표된 약가가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약가와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었다”며 “그러던 정부가 지금 시점에서 국내 약가 인하를 위한 참고자료로 해외 약가를 분석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고 전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약제 재평가의 당위성을 위한 연구만 수행할 것이 아니라 지출 구조 분석을 통해 확보된 재원을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서도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앞서의 약가 전문가는 “단순하게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를 낮추거나 혹은 신약의 지출을 높인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며 “제네릭 약가를 낮춘다면 어느 수준까지 낮출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연구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겠지만, 특허만료 의약품을 외국 약가와 비교했을 때 일부 질환에서는 국내 약가가 높을 수도 있다. 약가가 높은 의약품이 약가가 떨어질 수 있는 배경이다”며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국내 약가가 해외 대비 낮을 경우엔 과연 해외 수준까지 약가를 올릴 것인지는 미지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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