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증세를 겪는 환자들에게 해열진통소염제 이부프로펜(ibuprofen)을 선택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부프로펜 등 ACE 억제제를 복용한 환자들이 세포 표면 표적 단백질인 ‘안지오텐신전환효소(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ACE2)’의 과다 발현 때문에 코로나19에 취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같은 결론과 상반된 동물실험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ACE2 발현이 감소하기 때문에 노인들의 코로나19 중증도나 사망률이 높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 이부프로펜 계열의 ACE 억제제 복용이 코로나 감염 위험 및 중증도와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17일(현지시간)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은 “소염제와 코로나19 사망률의 상관관계를 밝힌 최근 연구는 없지만 소염제가 코로나19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 조사 중이다"며 "우리는 이부프로펜이 아닌 파라세타몰(paracetamol)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이부프로펜 계열의 해열제가 코로나19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부프로펜’ 논란이 촉발된 결정적인 계기다.

그렇다면 ‘이부프로펜’ 복용은 코로나19 증상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을까.

대다수 언론은 WHO 발표 내용을 쏟아내면서 스위스 바젤대 의대 연구팀이 의학저널 ‘란셋’에 게재한 ‘고혈압 및 당뇨병 환자는 COVID-19 감염 위험이 증가할까’라는 연구 논문을 인용했다. 이부프로펜을 포함한 일부 약품이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는 환자의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나 중증도를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연구논문에 의하면 사스(SARS) 등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이 인체로 확산하는 주된 원인은 코로나19가 인체 세포에 감염될 때 사용하는 세포 표적 단백질인 ACE2의 과다 발현 때문이다. 특히 1형 및 2형 당뇨병 환자, 고혈압환자는 ACE 저해제나 안지오텐신2 수용체 차단제(ARB)라고 불리는 약물을 사용하는데 이들 약물이 ACE2의 발현을 증가시켜 코로나19의 감염이 촉진될 수 있다는 것.

ACE2는 코로나19가 우리 몸의 세포로 들어가기 위해 사용하는 수용체다. 코로나19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ACE2에 결합해 감염을 일으키는데 이 과정의 ‘관문’ 역할인 ACE2 수용체가 늘어나면 코로나19의 침투 및 증식 기회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게 연구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 연구는 노인들의 코로나19 중증도나 사망률이 젊은 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ACE2 발현이 나이가 들수록 감소한다는 동물실험 연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의학도서관(NCBI)에 게재된 ‘생쥐에서 혈관 레닌-안지오텐신 시스템의 연령 관련 변화’에 따르면 24개월 쥐는 2개월 및 12개월 쥐에 비해 ACE2 발현이 감소했다. 나이가 들수록 ACE2의 발현이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 것.

익명을 요구한 전문의는 “ACE 수용체가 현저하게 줄어든 노인에서 코비드19의 중증도나 사망률이 높은 상황”이라며 “ACE2 수용체의 과다 발현이 코비드19 감염의 위험요인이 될 것이라는 것이 바젤 의대 연구의 전제 자체를 깨뜨릴 수 있는 결과다. 동물실험상의 한계도 있지만 바젤 의대 연구팀이 내놓은 연구에도 임상 데이터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연구팀이 지난 11일 발표한 ‘SARS-CoV2 수용체 ACE2 유전자 발현 및 조절의 개별 변형’ 연구에 의하면, ACE2 수용체 발현이 젊은 아시아 여성에서 높고, 나이가 들수록 감소했다. 특히 2형 당뇨병 환자에서도 ACE2 발현이 감소했다. 당뇨병 환자들의 ACE 억제제 복용이 ACE2 과다 발현 가능성을 높여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할 수 있다는 바젤 연구팀의 결론과 상반되는 것.

때문에 추가 연구를 통해 이부프로펜 등 ACE 억제제 계열의 약들과 코로나19의 인과관계가 증명될 때까지 약 복용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다른 전문의는 “WHO조차 이부프로펜에 대한 복용 자제를 권고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스위스 바젤 연구팀의 연구 역시 기존의 연구들과 상충된다. 추가적인 데이터, 즉 임상 결과나 동물 실험이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 고혈압 또는 당뇨병 환자들은 자신들이 복용해온 약을 바꿀 필요는 없다. 지나친 공포와 두려움을 지닐 이유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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